리튬이온전지는 충·방전이 가능한 이차전지다. 음극에 저장된 리튬이온이 전해질을 통해 양극으로 이동하면 반대로 전자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이동해 전류가 발생한다. 김명환 한국화학연구원 차세대 이차전지 혁신전략연구단장은 한국 이차전지 산업을 세계 정상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그는 1996년 LG화학(051910)의 초대 배터리개발팀장을 맡아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했다. 2000년대에는 중대형 전지 분야를 개척해 이차전지 종주국이던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전기차용 리튬이온전지 상용화에도 성공했다. 김 단장은 LG화학 배터리연구소장(사장)과 LG에너지솔루션(373220) 전지사업본부 CPO(최고생산구매책임자)를 지냈다.

지난 18일 대전 화학연 본원에서 만난 김 단장은 대기업에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으로 옮긴 이유를 묻자 “이차전지 산업의 초석을 놓은 사람으로서 이제는 다음 세대를 위한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배터리 기업들은 막대한 연구 인력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다양한 차세대 전지 개발에 나서고 있다”며 “우리끼리 경쟁하고 싸울 때가 아니라 산·학·연이 힘을 모아 중국과의 경쟁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김명환 화학연 차세대 이차전지 혁신전략연구단 단장은 지난 18일 대전 한국화학연구원 본원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중국에 차세대 전지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는 산·학·연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국화학연구원

◇中 배터리 막으려면 산·학·연 힘 모아야

김 단장은 2023년 말 기업 일선에서 물러나고 출연연 연구자로 새출발했다. 국가전략기술에서 산·학·연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글로벌 톱(TOP) 전략연구단’이 출범하면서 김 단장이 차세대 전지 개발을 맡았다. 출연연이 외부에서 뛰어난 인재를 영입할 수 있도록 특별 채용과 정년 적용 없는 파격적인 보수 지급이 가능하게 한 ‘국가특임연구원’ 제도의 첫 수혜자도 김 단장이다.

출연연이 아무리 파격적인 보수를 지급한다고 해도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수준에는 미치기 어렵다. 그럼에도 김 단장이 출연연 연구자를 택한 건 중국이라는 위협 때문이었다. 그는 “한국이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선도자)가 된 기술이 많지 않은데 이차전지는 그중 하나”라며 “우리 손으로 어렵게 만든 소중한 산업인데 중국에 밀리는 상황이 안타까웠고, 다시 선두를 찾아오기 위해 역할을 맡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차세대 이차전지 전략연구단에서 2029년까지 1300억원 예산으로 리튬이온전지의 뒤를 이을 차세대 전지를 개발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를 위해 화학연뿐만 아니라 출연연 7곳이 힘을 모았다. 김 단장이 몸담았던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006400), SK온 등 국내 이차전지 대표 기업들도 참여한다. 말 그대로 차세대 전지 개발에서 중국과 대결할 국가대표팀을 만든 셈이다.

연구단은 2029년까지 크게 네 종류의 차세대 전지를 개발한다는 계획이다. 고에너지 리튬금속전지, 초경량 리튬황전지, 고안전성 전고체전지, 비리튬계 이차전지다. 하나도 아닌 네 개의 차세대 전지를 개발하는 것인 만큼 도전적인 목표일 수밖에 없다. 수조원 단위의 투자가 이뤄지는 중국에 비하면 투자 규모도 작다.

김 단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연구단의 성과를 극대화하겠다고 밝혔다. 연구단이 모든 것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업이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적인 난제 해결에 집중한다는 전략이다. 김 단장은 “기업들은 이미 2030년 전에 차세대 전지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우리는 기업이 개발하는 차세대 전지 기술 중에 결정적인 난제를 대신 풀어서 기업에 넘겨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 2월 5일 열린 차세대 이차전지 혁신 전략연구단 1차 연도 중간 점검 워크숍에서 김명환 단장이 참여기관을 소개하고 있다./한국화학연구원

◇LG·삼성·SK 하나로 모으는 게 내 역할

김 단장은 “기업에서만 일하다 화학연을 와보니 출연연의 연구 수준과 역량이 뛰어나다는 걸 알았다”며 “문제는 각자 뭘 하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상태에서 오리무중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출연연끼리 불필요한 중복 연구를 하는 일도 많았다. 기업도 출연연에 어떤 기술이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는 부임 이후 차세대 전지 개발에 필요한 요소 기술을 정리하는 기술 로드맵부터 만들었다. 각각의 요소 기술을 개발할 기관과 연구자를 나누다 보면 중복되거나 빠진 연구를 알 수 있고, 더 효율적인 차세대 전지 개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국내 이차전지 대표 기업 3사를 비롯해 기업의 참여가 없으면 차세대 전지 개발도 어렵다고 봤다. 그는 로드맵을 바탕으로 출연연과 기업을 연결했다. 김 단장은 “나의 임무는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출연연이 하도록 만드는 것”이라며 “차세대 전지 개발은 출연연과 민간 기업의 역할이 명확히 나뉘어 있으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LG에너지솔루션에 있을 때 한국기계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협업한 사례를 언급하며 기업과 출연연이 함께할 때 시너지 효과가 난다고 했다. 김 단장은 “LG에너지솔루션 CPO를 할 때 레이저를 이용한 용접이나 절단 기술이 필요했는데 기계연을 방문했더니 그곳에 있었다”며 “우리가 출연연이 가진 기술과 기업이 원하는 기술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을 이유로 정보 공유를 꺼리는 기업들을 협력의 장으로 데리고 나오는 것도 중요하다. 김 단장은 6월에 배터리 3사의 고위급이 참여하는 기술위원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무진 사이의 소통은 더 자주 한다. 김 단장은 “연구단에서 진행하는 연구에 대해 배터리 3사의 의견을 받고 있다”며 “더 진행해야 할 연구는 무엇인지, 그만둬야 할 연구는 무엇인지 기업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면서 선택과 집중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을 지낸 김명환 한국화학연구원 차세대 이차전지 혁신전략연구단 단장은 국내 이차전지 산업의 초석을 닦은 인물이다. 지금은 화학연에서 차세대 전지 개발의 중책을 맡았다./한국화학연구원

◇해외 특허 패싱, 애써 만든 기술 사장돼

김 단장은 두 달 동안 출연연에서 연구를 하며 공공 연구기관의 한계와 문제점도 파악했다. 그는 가장 먼저 특허 문제를 지적했다. 기업들은 해외 특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출연연은 애써 기술을 개발하고도 국내 특허만 등록하고 해외에는 등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김 단장은 “LG에너지솔루션만 해도 해외 특허 비율이 50%를 넘는데, 출연연은 해외 특허 비율이 5~10% 수준에 불과하다”며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해외 특허 등록을 안 하는데, 기업이 나중에 출연연의 연구 성과를 활용하고 싶어도 해외 특허가 없으면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단장에 따르면 출연연이 해외 특허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은 연구자 평가에서 논문을 더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특허 없이 논문만 쓰는 건 국민 세금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를 전 세계에 공짜로 공개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출연연의 특허 관리를 체계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행정 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출연연을 더 개방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 단장은 연구단장으로 입사하는 과정에서 대학 입학증명서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단장으로 영입하는 건 LG화학 시절부터 내가 쌓아온 경력을 보고 판단한 것일 텐데, 뜬금없이 대학 입학증명서가 있어야 입사할 수 있다는 말에 당황했다”며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줄여야 외부에서 더 많은 인재를 데려올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