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원자력 컨소시엄이 원자력 종주국인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 수출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1959년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해 원자력 기술을 발전시킨 한국이 약 60년 만에 미국에 역으로 기술을 수출하게 된 것이다. 연구용 원자로는 핵분열 때 나오는 중성자와 방사선을 이용해 각종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원자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MPR 컨소시엄(책임자 임인철 원자력원 부원장)이 미국 미주리대가 국제 경쟁입찰로 발주한 미주리대 ‘차세대연구로 사업’의 첫 단계인 초기 설계 계약을 체결했다고 17일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시작된 한국 원자력 기술로 종주국인 미국에 연구로 설계 수출의 첫발을 내디딘 쾌거라는 데 특별한 의의가 있다”고 했다. 한국 원자력 기술은 1959년 7월 14일 미국으로부터 연구용 원자로 1호기(TRIGA Mark-Ⅱ)를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66년 만에 원자력 기술을 종주국으로 역수출한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원자력 기술을 확보했다는 평가다.
이 사업은 미국 미주리대의 20MWth급 고성능 신규 연구로 건설을 위한 설계 사업이다. 미주리대의 설계 사업 입찰에 컨소시엄이 참여해 지난해 7월 최종 협상 대상자로 선정, 17일 사업의 첫 단계로 초기 설계 계약이 확정됐다. 계약 체결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국내 원자력 연구, 사업 역량이 꼽힌다. 과기정통부의 꾸준한 투자, 원자력연 연구자들의 기술 개발, 현대엔지니어링의 원자력 사업 경험 등이 합쳐진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원자력연에서 개발한 세계 유일의 고성능 연구로 핵연료 기술은 사업 수주의 핵심적인 기술 요인으로 평가됐다. 원자력연은 우라늄 밀도가 기존보다 높아 연구로 성능과 핵확산 저항성을 높인 기술을 개발했다. 다양한 해외 연구로 사업의 성공적인 수행 경험도 응찰 준비와 수주에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과기정통부와 원자력연은 1995년 국내 최초 연구로인 하나로(30MWth) 자력 설계·건조·운영을 시작으로 수출 성과를 내왔다. 2014년 말레이시아 연구로 디지털 시스템 구축 사업, 2017년 요르단 연구로(5MWth) 설계 및 건설, 2024년 방글라데시 연구로 디지털 시스템 구축 사업과 네덜란드 델프트 연구로 냉중성자원 제작 및 설치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원자력연은 또 2022년 수출형 신형 연구로(15MWth)를 착공하여 건설하고 있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연구로 해외 진출 강화를 위한 전략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연구로가 노후화되고,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수요 증가에 따라 연구로 수출 시장 규모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연구로 수출을 촉진하고 연구로 관련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로 수출 전략성 강화, 민관 협력형 수출 기반 조성 및 기술 고도화, 국제 협력을 통한 수출 기회 확대 등을 지원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하면서 과학 분야 연구·개발(R&D) 협력에 차질을 빚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 가운데, 이번 계약이 이 같은 우려를 일정 부분 불식시켰다는 평가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이번 사업 수주는 과거 우리나라가 원자력을 도입할 때 도움을 줬던 미국에 역으로 연구로 설계를 수출하는 우리나라 원자력의 새로운 성공 역사”라며 “정부는 연구로에 대한 전략적 수출을 강화하는 한편, 국가 전략 기술인 선진 원자력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주한규 원자력연구원 원장은 “이번 사업 수주는 세계 유일의 고성능 연구로 핵연료 기술과 높은 설계 능력 등 연구원이 쌓아온 독보적인 기술력과 민간의 해외 사업 역량이 결합되어 만든 또 하나의 이정표”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