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튀르키예 남성이 지진으로 사망한 아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빨간 풍선을 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일 오전 10시가 조금 지났을 때입니다. 튀르키예 남동부 끝자락에 있는 도시 가지안테프에서 강력한 지진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튀르키예 현지 시각이 오전 4시 17분쯤이었습니다. 모두가 잠들었을 깊은 새벽에 도시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거죠.

도시 전체가 하룻밤 사이 쑥대밭이 되고 사상자가 쏟아지면서 모든 매체가 튀르키예 지진을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끔찍한 소식에 안타까워 하던 와중에도 몇몇 기사 제목이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습니다. ‘진도 7.8 강진에 사상자 다수 발생…’ ‘규모 7.8 지진 피해 돕는 구호물자 행렬…’

어떤 기사에서는 진도, 어떤 기사에서는 규모라는 단어로 지진의 강도를 전하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같은 뜻이 아닌가 싶은 두 단어는 사실 지진 분야에서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쓰입니다. 때문에 두 단어를 아무렇게나 섞어 쓰는 건 심각한 오류일 뿐더러 만에 하나 한국에서도 큰 지진이 발생했을 경우 대응 요령을 전달할 때 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지진 진도와 규모는 정확히 어떻게 다른 걸까요? 조창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장과 함께 알아봤습니다.

심각한 지진 피해를 입은 튀르키예 안타키아 지역의 모습. /연합뉴스

◇규모는 ‘절대적 개념’

지진은 오랫동안 누적된 변형 에너지가 일순간 한꺼번에 방출되면서 땅이 흔들리는 현상입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번 튀르키예 지진이 발생한 가지안테프 인근에서는 약 50년간 큰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 곳에는 각각 아나톨리아판, 아라비아판이라 불리는 두 지각판이 붙어있는데, 50년간 큰 지진이 없었다는 건 두 지각판이 서로를 미는 힘이 그만큼 오래 쌓였다는 뜻입니다. 그 힘이 한 순간에 터지면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한 거죠.

규모(Magnitude)는 미국 지진학자 찰스 리히터가 1932년에 만든 지진 척도입니다. 지진이 발생했을 때 방출되는 에너지의 양을 나타내는 절대적 개념입니다. 규모는 단위로 로그값(log)을 쓰기 때문에 규모가 1 오르면 진폭은 10배씩 상승합니다. 지진 에너지는 규모가 1 오를 때마다 약 30배씩 늘어납니다.

지난 2016년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과 이번 튀르키예 지진을 비교한다면 규모에 따라 지진이 얼마나 큰 폭으로 강력해지는지 이해가 쉬울 겁니다 규모가 7.8이었던 튀르키예 지진은 규모가 5.6이었던 경주 지진보다 진폭은 약 100배, 지진 에너지는 약 900배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피해 상황도 숫자 만큼 크게 차이가 납니다. 경주에서는 지진으로 한옥 약 2000채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다행히 지붕 기와가 부서지거나 벽이 갈라져 물이 새는 정도였죠. 반면 튀르키예는 땅이 갈라지고 건물이 무너져내리면서 사실상 도시 전체가 붕괴했습니다. 21일 기준 튀르키예 재난관리국은 이번 지진으로 총 4만2300여 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지진계가 지진으로 인한 땅의 흔들림 정도를 기록하고 있다. /로이터

◇진도는 ‘상대적 개념’

규모와 달리 진도(Seismic intensity)는 상대적 개념입니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지표면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그 정도를 나타내는 값이죠. 지진이 발생한 지점인 진앙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진도도 떨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지진이 발생하면 규모는 고정되지만 진도는 측정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진도는 통상적으로 사람이 감지하는 흔들림이나 지진으로 인한 구조물 피해 정도와 같은 전체적인 상황을 고려해 값을 매깁니다. 그만큼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를 계산하는 척도도 나라에 따라 다르죠. 한국은 원래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인 JMA를 쓰다가 2001년부터는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MMI)’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은 1884년 이탈리아 화산학자인 주세페 메르칼리가 처음 고안했던 것을 1931년 미국의 해리 우드, 프랭크 노이만이 보완해 완성된 진도 계급입니다. 이 계급은 진도를 1(못 느낌)에서부터 12(완파)까지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튀르키예 지진이 발생한 지점에서의 진도는 9(격렬함)로 계산됩니다.

지난 12일 오전 튀르키예 하타이 주 안타키아 지진 피해 현장에서 대한민국긴급구호대(KDRT)가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 /뉴스1

◇지진 대응 요령은 ‘진도’가 기준

요약하자면 ‘규모’는 지진이 발생한 지점에서 방출된 에너지의 절대적 크기를 쉬운 숫자로 쓴 개념입니다. ‘진도’는 지진 영향으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 정도를 상대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만든 것이고요.

지진 발생 시 대응 요령은 규모가 아닌 진도를 기준으로 합니다. 지진으로부터 목숨을 지키려면 진앙에서 에너지가 얼마나 방출됐는지보다는 그로 인해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를 아는 게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규모와 진도를 혼동해선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규모 7, 진도 9에 해당하는 지진이 발생했는데 두 개념을 헷갈려 진도를 7로 알린다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벌어질 수 있습니다. 수정 메르칼리 진도 계급 기준으로 7은 오래된 건물 외벽이 무너질 수 있는 수준인 반면, 9는 새로 지은 건물이 통째로 붕괴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합니다. 그만큼 완전히 다른 대응 요령이 필요하기 때문에 두 개념을 잘 모르고 섞어 쓰면 위험할 수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