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기열을 옮기는 이집트숲모기(흰줄숲모기, Aedes aegypti)./미 CDC

기후 변화가 필리핀의 뎅기열 확산을 부추긴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내 연구진이 수학을 이용해 최근 5년간 필리핀 지역의 기후와 보건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다.

김재경 기초과학연구원(IBS) 의생명수학그룹 CI(한국과학기술원 수리과학과 교수) 연구진이 필리핀에서 뎅기열 확산이 건기의 지속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발표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 온라인판에 13일 게재됐다.

뎅기열은 온도와 습도가 높은 아열대와 열대 지역에서 열대숲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감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00년 50만 명에서 2019년 520만 명으로 20년 만에 10배 가량 감염 사례가 증가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이상 고온과 극단적인 강우가 이어지면서, 모기의 번식이 활발해지고 뎅기열 감염 위험 또한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강우량이 뎅기열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오랫동안 의견이 엇갈려 왔다. 일부 연구에서는 강우량이 증가하면 모기의 번식지가 늘어나 감염 위험이 커진다고 분석하는 반면, 다른 연구들은 강한 비가 내릴 경우 모기의 서식지가 씻겨 내려가 감염 위험이 낮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필리핀 보건부의 월별 뎅기열 감염자 수와 필리핀 기상청의 16개 지역별 기후 데이터를 분석했다. 기존 연구들은 기온과 강수량이 각각 독립적으로 뎅기열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하는 통계 모델을 사용했으나, 이번 연구에서는 새로운 인과추론 기법인 ‘GOBI(General ODE-Based Inference)’를 적용해 기온과 강수량이 뎅기열 확산에 미치는 복합적인 영향을 분석했다.

필리핀 16개 지역의 5년간 기후 변화와 뎅기열 발병 데이터 분석 결과./IBS

그 결과 기온 상승은 모든 지역에서 뎅기열 발생을 증가시켰다. 강우의 영향은 지역별 건기 길이의 변동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 비교적 건기의 길이가 일정한 필리핀 서부 지역에서는 비가 올수록 뎅기열 감염이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다. 반대로 건기 길이가 불규칙한 동부 지역에서는 강수량이 증가하면 뎅기열 발생이 증가했다.

이러한 차이는 강우 패턴과 모기의 서식지 변화 때문으로 분석된다. 건기가 일정한 지역에서는 우기가 시작되기 전에 방역 작업이 가능하고, 강한 비가 내릴 때 모기 서식지가 효과적으로 씻겨 내려갈 수 있다. 반면 건기 길이가 불규칙한 지역에서는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서 뎅기열 감염 위험이 커진다. 이 결과는 푸에르토리코의 3개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건기 길이가 일정한 지역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시기에 모기의 서식지가 씻기기 때문에 방역 자원을 우기 직전에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며 “건기 길이가 불규칙한 지역에서는 모기 서식지가 지속적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아 연중 지속적인 방역 활동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재경 CI는 “건기의 일정성이 뎅기열 발생에 미치는 영향은 기존 연구에서 간과된 요소였다”며 “기후 변화가 뎅기열을 비롯해 말라리아, 독감, 지카 바이러스와 같은 기후에 민감한 질병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참고 자료

Science Advances(2025), DOI: https://doi.org/10.1126/sciadv.adq1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