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국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달 16일 조선비즈와 만나 "호흡기 바이러스에 대해 승인된 백신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효능과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며 "백신 접종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고, 이해득실을 따졌을 때 이득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서울성모병원

“호흡기 바이러스는 언제든 다시 찾아와 인류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을 가장 쉬운 방법은 백신 접종뿐입니다.”

이진국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지난달 16일 조선비즈와 만나 “백신 접종은 호흡기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고, 이해득실을 따졌을 때 이득이 훨씬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가톨릭대 의대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뒤 줄곧 서울성모병원에서 15년간 근무했다.

최근 중국과 홍콩, 대만 등 중화권을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달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세계 73국 지역·영토에서 보고된 코로나19 검사 양성률은 11%로, 99국 보고에서 양성률 12%를 기록한 지난해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중국은 코로나19 감염률이 16.2%로 증가했으며, 입원 환자 수도 약 한 달 사이 2배로 급증했다.

모두 인접 국가들인 만큼, 우리나라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국내 코로나 바이러스 검출률은 지난달 18~24일(21주차) 기준 8.8%로 2주 연속 상승세를 보였다.

방역당국이 긴장하는 건 코로나19뿐만이 아니다. B형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감기를 유발하는 리노바이러스 같은 호흡기 바이러스들도 동시에 유행하고 있다. 이 교수는 “국내 호흡기 바이러스의 계절적 특성을 분석한 결과, 한국만의 특수한 유행 주기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당시 철저한 방역으로 바이러스들이 거의 사라졌다가, 일상 회복 후 다시 기존 유행 패턴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해 질병관리청과 함께 코로나19 이전 전국 방역 데이터를 분석해 호흡기 바이러스 8종의 계절적 특성을 규명했다. 그 결과, 리노바이러스와 아데노바이러스는 봄·가을,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와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등은 주로 겨울철에 유행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 교수는 “체계적으로 호흡기 바이러스의 주기성과 유행 시점을 분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최근처럼 국내외에서 다양한 바이러스가 동시에 유행하는 상황에서 이번 연구 결과는 감염병 예측과 조기 경보 시스템 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RSV 위험성에 주목했다. 그는 “RSV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독성과 세포 파괴력이 커서 고령층이나 기저질환자에게는 매우 위협적인 바이러스”라며 “폐렴이나 천식,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악화로 입원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RSV는 유아·소아에게 흔히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고령층에서도 중증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문제는 RSV에는 아직 확실한 치료제가 없다는 점이다. 그는 “독감이나 코로나19는 항바이러스 치료제가 있지만, RSV는 아직 치료제가 없어 예방이 가장 중요한 대응책”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RSV를 비롯한 호흡기 바이러스의 유행 요인으로 ‘대기 오염’을 지목했다. 현재 환경부 지원을 받아 호흡기 바이러스와 대기 오염의 상관 관계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그는 “과거 연구를 보면 미세먼지처럼 대기오염이 심해지면 국내에서 천식, COPD 환자들의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이 늘어나는 양상을 보였다”며 “앞으로 대기 오염이 호흡기 질환자에게 정확히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분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 2022년 11월 제26차 아시아태평양호흡기학회(APSR)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렸다./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이 교수는 한국·일본·홍콩 등 아시아태평양호흡기학회(APSR) 산하 COPD 연구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그동안 서구 중심의 호흡기 바이러스 진료 지침을 따라왔지만, 이제 동양인 특성에 맞춘 가이드라인과 치료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서양의 COPD 환자는 대부분 비만형이지만, 한국은 근육량이 적고 마른 체형이 많다”며 “서양인과 차별화된 동양인의 호흡기 질환을 잘 연구해, 적합한 맞춤형 치료법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 데 백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19를 유발한 바이러스는 새로운 형태라 인류가 면역을 갖고 있지 않아 큰 피해를 입었지만, RSV나 폐렴구균, 독감 등 대부분의 호흡기 바이러스는 일정 수준의 면역이 형성돼 있다”며 “예방백신 접종과 기본적인 대비만 해도 충분히 감염을 막거나 중증으로 가는 것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점에서 백신에 대한 일부 부정적 인식이 공중 보건에 매우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최근 백신의 필요성과 효능을 두고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지만, 과학적으로 입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백신은 개인뿐 아니라 공공의 건강을 지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