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담배소송 항소심 최종변론(12차)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담배는 폐암을 비롯한 질병 원인이 됩니다. 담배 회사들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호흡기내과 전문의)은 22일 오후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533억원 손해 배상 소송 2심 최종 변론에 출석하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들이 흡연으로 폐암과 후두암에 걸렸으니 담배 회사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환자들이 수술을 앞두고 병원 복도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수없이 봤다”면서 “담배 중독성 때문에 환자들은 자기 몸이 하나밖에 없는데도 (수술 전) 흡연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담배가 아니면 폐암에 걸릴 수 없다”면서 “여러 학회도 담배와 폐암의 인과 관계를 지지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1일 오전 서울 한 편의점에 있는 담배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의료계, 건보공단 담배 소송 지지 성명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 4월 담배 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을 상대로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폐암과 후두암에 걸린 환자 3465명을 치료하느라 건보공단이 2003~2012년 진료비로 쓴 금액을 반환하라는 것이다.

1심은 담배 회사 손을 들어줬다. 흡연 뿐만 아니라 가족력, 개인 습관, 주변 환경이나 다른 요인에 의해 암이 발병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이 항소해 사건은 2심으로 넘어갔다.

의료계는 건보공단 담배 소송을 지지하는 성명을 잇달아 내고 있다. 대한금연학회는 “담배로 인한 건강 피해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 사회 문제”라며 “(흡연으로 암에 걸려 발생한) 진료비는 건보공단 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들 치료비가 건보공단에서 나가기 때문에 결국 국민들이 부담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한폐암학회도 “흡연이 폐암의 가장 직접적이고 핵심적인 원인”이라면서 “흡연은 폐암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진행 속도와 중증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대한간학회는 “흡연이 폐암과 후두암 발병 원인”이라면서 “담배 회사는 제품 중독성과 유해성을 알면서 축소·은폐하거나 충분히 경고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픽=정서희

◇건보공단, 폐암 유발 밝힌 연구 결과 제출

건보공단은 흡연이 폐암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서울고법 민사6-1부(재판장 박해빈)에 새로 제출했다. 30년 이상 담배를 피우거나 하루 한 갑씩 20년 이상 담배를 피운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소세포 폐암 발생 위험이 54배 높다는 내용이다. 편평세포 폐암은 21.37배, 편평세포 후두암은 8.3배 높았다.

반대로 유전 요인에 따른 암 발병 위험 정도는 1.2~1.8배 차이에 불과했다. 가족력보다 흡연 여부, 기간이 암 발병에 훨씬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건보공단 건강보험연구원과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전국 13만6900여 명의 건강 검진 자료, 암 등록 자료, 유전위험점수(PRS)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앞서 건보공단이 소송을 제기하자 담배 회사들은 건보공단이 자격이 없다고 맞섰다. 흡연으로 암에 걸린 환자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어도 건보공단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상 보험 급여(진료비)를 관리하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자격이 있다고 했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홍기찬)는 2020년 11월 건보공단이 소송을 낼 자격은 있지만, 흡연과 암의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인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이날 최종 변론을 마치고 선고 날짜를 정한다. 이렇게 되면 11년간 이어진 담배 소송 최종 결론이 나온다. 2심 재판부가 1심을 뒤집고 건보공단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대법원 판례는 담배를 피우다 질병에 걸리면 흡연자 책임이라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