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저출생이 한국의 존립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혼 나이가 점점 늦어지면서 난임 부부도 늘고 있다. 국내에 난임 진단을 받는 남녀 환자 수는 연간 24만명 수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3년 난임 시술(보조생식술)을 받은 환자가 13만6906명이다.
이혜준 카이헬스 대표이사는 산부인과 전문의로 병원에서 많은 난임 환자를 진료하면서 임신 성공률을 높일 방법을 고민했다. 그 답이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배아 선별 기술이었다. 그는 이 아이디어로 서울대 의대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했고, 2021년 10월 카이헬스를 창업했다.
서울 강남구 카이헬스 사무실에서 만난 이혜준 대표는 “난임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배아”라며 “AI 기술로 최적의 배아를 선별해 체외 수정 시술의 성공률을 높여 국내외 난임 부부들을 돕고자 회사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카이헬스는 최적의 배아를 선별하는 AI인 ‘비타엠브리오 (Vita Embryo)’ 를 개발해, 유럽, 싱가포르, 인도 의료기기 인증에 이어 2025년 1월 국내 최초로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3등급 허가를 획득하고 혁신의료기기로 선정됐다. 범부처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의 2025년 10대 대표 과제로 선정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AI로 난임 시술 성공 가능성 높여
흔히 시험관 아기 시술이라고 부르는 체외 수정 시술은 난소에서 난자를 채취해 정자와 수정시키고, 이렇게 생성된 배아를 자궁 내로 이식하는 시술이다. 수정 성공률을 높이려면 일단 난자가 많아야 한다. 과배란 유도를 위해 약 10~14일 동안 매일 난포자극호르몬을 자가 주사한다. 이 과정은 육체적·정신적으로 큰 부담을 준다.
정자와 난자의 수정이 성공해도 체외 수정 시술은 한 주기당 성공률이 30% 정도로 낮다. 이 대표는 “난임의 원인은 남성 정자의 문제, 여성 자궁·난자의 문제 등 복합적인데, 결국 건강한 양질의 배아가 임신 성공의 80%를 차지할 만큼 중요하다”고 말했다.
체외 수정 시술을 하기 전 먼저 연구원이 현미경을 보고 건강한 배아를 선별한다. 이 대표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주관이 개입되기도 하고 편차가 크다는 한계가 있다”고 했다. 카이헬스가 개발한 비타엠브리오는 한국과 미국의 배아 이미지와 임신 결과 데이터를 활용해 학습시킨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임신 확률이 높은 배아를 선별한다.
이 대표는 “인공 수정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키기 전에 AI가 배아 모양을 평가해 나중에 태아로 잘 자랄 수 있는 것을 선별해주는 것이 비타엠브리오의 핵심”이라며 “현미경으로 배아 사진을 촬영하면 AI가 실시간으로 분석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배아 선별용 AI를 개발하기 위해 국내·외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이정렬 교수 연구진이 함께 개발했다. 연구진은 AI 모델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난임 환자 대상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임상시험 결과 비타엠브리오는 임신에 성공할 배아를 고르는 능력이 사람보다 뛰어난 것으로 평가됐다. 사람이 임신 확률이 높은 배아를 고르는 확률이 30% 수준인 반면, AI가 양질의 배아를 선별하는 확률이 65% 수준으로 더 높았다고 회사는 밝혔다.
이 대표는 “난임은 그 자체로도 고통스럽지만 실패에 따른 상처가 크다”며 “비타엠브리오를 통해 성공률이 높은 배아를 이식하면 임신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고, 임신 성공까지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AI가 학습하는 데이터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비타엠브리오의 성능은 계속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해외 진출 추진, 범부처연구단 지원이 큰 힘”
카이헬스는 올해 국내 시장에서 본격적인 사업 성과를 내는 한편, 해외 시장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혜준 대표는 카이헬스의 주요 사업 이정표로 지난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신의료기술평가 대상 지정’을 꼽았다. 다음에는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을 통해 신의료기술로 선정되거나 평가 유예를 받을 수 있다.
카이헬스는 신의료기술평가 유예를 노리고 있다. 이 제도는 조기 도입이 필요한 새로운 의료 기술에 대해 평가를 유예해줘 조기에 비급여로 의료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이 대표는 “신의료기술 평가 유예 제도를 통해 연내 비급여 수가(의료서비스 대가)를 획득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해외 시장도 노리고 있다. 이 대표는 “유럽, 싱가포르, 인도 의료기기 인증을 이미 획득했으며,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한 FDA(식품의약국) 인증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임 부부는 어느 나라나 있고, 최근 세계적으로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여러 환경적 문제들로 인해 난임 남녀 환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기술 개발부터 시장 진입까지 정부 지원 사업 덕이 컸다고 강조했다. 카이헬스는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을 통해 총 16억원 규모의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부처가 공동으로 추진해 의료기기 연구·개발의 전주기를 지원하는 국책사업이다.
이 대표는 “스타트업에는 연구·개발뿐 아니라 임상시험, 인증 획득 등에서 발생하는 비용 부담이 큰 데 범부처 사업단을 통해 재정적 도움을 받아 보다 마음 편히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또 국내뿐 아니라 해외 인증 절차에서 행정적 어려움도 있는데, 범부처 사업단이 논의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 보다 빨리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카이헬스는 비타엠브리오의 성능 고도화와 시장 확대뿐 아니라 배아를 최적화할 수 있는 환경과 난임 여성의 난자를 보다 잘 배양할 수 있는 기술에 관한 연구·개발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 대표는 “카이헬스가 많은 난임 부부들의 고통을 덜고, 건강한 아기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설루션을 제공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