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장에서 공생하는 다양한 미생물들이 컬러로 표현된 현미경 사진./Eye of Science

장내 미생물이 만성 통증인 섬유근육통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입증됐다.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면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과학계는 마땅한 약이 없던 만성 통증을 치료할 새 길을 제시한 연구로 평가했다. 연구진은 실제 환자에 적용하기 위해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 테크니온 공대와 캐나다 맥길대 공동 연구진은 “장내 미생물이 만성 통증 조절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동물실험과 사람 대상 임상시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24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뉴런(Neuron)에 발표했다.

섬유근육통은 전 세계 인구의 약 2~4%가 겪는 것으로 알려진 난치성 만성 질환이다. 근육이나 신경 손상 없이도 전신에 통증과 피로가 발생하며, 특히 여성 환자 비율이 높다.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이나 치료법은 나오지 않았다.

연구진은 지난 2019년 섬유근육통 환자들의 장내 미생물 구성이 건강한 사람과 뚜렷하게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미생물 차이가 통증을 일으키는 원인일 수 있다고 보고 동물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먼저 항생제로 장내 미생물을 없앤 생쥐에게 섬유근육통 환자와 건강한 여성의 대변에서 얻은 장내 미생물을 각각 이식했다. 환자의 미생물을 이식한 생쥐는 압력가 열, 냉각 자극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통증 반응을 보였다. 반면 건강한 사람의 미생물을 받은 생쥐는 이런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어 통증 반응을 보인 생쥐에게 다시 항생제를 써 기존 미생물을 제거한 뒤, 건강한 사람의 장내 미생물을 이식하자 통증 반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연구진은 섬유근육통 환자의 장내 미생물이 면역계를 자극하거나, 통증 신호를 조절하는 신경 회로에 영향을 주는 대사물질을 만들어낸다고 추정했다.

동물실험에 이어 실제 환자들에게도 실험해봤다. 기존 치료법으로 효과를 보지 못한 섬유근육통 환자 14명에게 건강한 사람에서 추출한 장내 미생물을 알약 형태로 10주간 투약했다. 참가자는 생쥐들과 마찬가지로 투약에 앞서 항생제를 써 기존 장내 미생물을 제거했다.

참가자 14명 중 12명은 통증은 물론 수면 장애와 불안 증상 등에서 개선을 보였다. 전반적으로 통증 민감도가 뚜렷하게 낮아졌다. 연구를 주도한 아미르 미네르비(Amir Minerbi) 테크니온 공대 의대 교수는 “섬유근육통 환자의 장내 미생물은 통증에 관여하는 신경 회로를 자극하거나, 간에서 나오는 화학물질을 통증 유발 분자로 바꿀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내 환경이 통증 민감도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과학계는 장내 미생물이 만성 통증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법이 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앞서 연구에서 장내 미생물은 소화 기능은 물론 뇌를 포함해 다양한 장기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내 세균은 소화기 질환은 물론, 관절염·비만·위염과 뇌질환까지 막아준다고 알려졌다.

케이틀린 새들러(Katelyn Sadler) 미국 텍사스대 신경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장내 미생물이 섬유근육통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 결과가 만성 통증 환자를 위한 비진통제 기반 치료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섬유근육통의 미생물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유전적 또는 환경적 요인인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시험이 필요하다”고 했다.

연구진은 후속 연구로 8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임상시험을 통해 섬유근육통 관련 통증을 유발하는 박테리아를 찾아내면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참고 자료

Neuron(2025), DOI: https://doi.org/10.1016/j.neuron.2025.03.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