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은 우리 몸에서 가장 큰 장기로, ‘인체의 화학 공장’으로 불린다. 영양분을 가공해 인체 곳곳에 보내거나 저장하며 노폐물을 처리한다. 하지만 바이러스나 술, 지방, 약물 등의 공격을 받아 70~80%가 망가져도 위험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침묵의 장기’라고 불리는 이유다.
간세포 손상이 지속되면 간이 굳고 오므라드는 간경화(간경변)가 일어나고 간암까지 부른다. 간암은 국내에서 7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이다. 종양이 간 안에 있거나 주변까지만 침범했을 때 발견하면 절제술만으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에 놓치는 경우가 많고, 절제술을 하더라도 암이 재발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해결책은 간 이식이다.
이승환(47) 강동경희대병원 장기이식센터 소화기외과 교수는 지난 11일 “전공의 시절 급성 간염으로 혼수 상태에 빠진 환자가 간 이식 수술 후 2~3일 만에 의식이 생기고 일주일 내 병실에서 걸어 다니는 것을 보고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사 입장에서 외과, 그중에서도 이식 수술은 가장 극적인 결과가 나오는 분야”라며 “환자가 바로바로 좋아지는 걸 보는 즐거움이 컸고 힘들지만 보람도 있다”고 말했다.
간 이식은 망가진 간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간을 넣는 방식으로 간경화와 간암을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외과 분야에서도 간 이식은 수술 시간이 9시간가량 걸릴 정도로 고난도 수술로 통한다. 수많은 혈관을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내 간 이식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세계 의학계도 한국 의료진의 간 이식 술기를 전 세계 1위로 꼽는다.
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절제술 또는 고주파 열 치료와 약물 등 비수술 요법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종양을 제거하는 절제술도 개복 수술에서 배에 5~12㎜의 구멍을 5개 정도 낸 뒤 광원, 카메라, 수술 도구를 집어넣어 종양을 포함해 간을 절제하는 복강경 간 절제술로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초기 간암이라고 해도 간경화로 인해 간 기능이 떨어진 상태라면 간 이식을 해야 한다. 이 교수는 “간경화와 간암의 주원인은 B형 간염과 알코올”이라며 “바이러스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B형 간염으로 인한 간경화 환자는 줄고 있지만, 음주로 인한 알코올성 간경화 환자는 많아진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간경화와 간암 환자가 치료를 받아도 호전되지 않거나 복수나 황달, 출혈 등 합병증이 있을 때 간 이식이 이뤄진다. 간 손상이 급격하게 진행돼 간을 이식받지 않으면 수일~수주 내 사망한다. 문제는 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환자는 많은데 장기 기증자는 적다는 사실이다.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 따르면 국내 장기 이식 대기자는 2023년 현재 5만1800여명에 이른다.
국내 의료진은 생체 간 일부 이식 방법으로 이 문제를 플었다. 간 이식 방식은 크게 뇌사자 간을 통째로 옮기는 ‘뇌사자 전(全) 간 이식’과 건강한 사람의 간을 일부 절제해 이식하는 ‘생체 간 이식’으로 구분된다. 간은 일부만 있어도 기능을 유지할 수 있어, 기증자나 수혜자 모두 충분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교수는 “국내에선 뇌사자 장기 공급이 부족해 전체 간 이식의 70% 정도가 생체 간 이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미국, 유럽은 우리와 달리 뇌사자 간 이식 수술이 생체 간 이식보다 더 많은데, 장기 기증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생체 간 이식은 혈액형이 다른 경우에도 가능하다. 이 교수도 지난해 혈액형이 다른 환자의 생체 간이식 수술에 성공했다. 간경화 말기였던 50대 남성 환자는 수술한 지 한 달이 되기 전에 건강하게 퇴원했다. 이 교수는 “다른 치료로는 더 이상 간 기능 회복이 불가능해 이식수술을 해야 했다”며 “가족 간 생체 간이식을 하기로 결정했으나, 환자와 기증자 간 혈액형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피가 몸에 들어오면 몸속 항체가 거부 반응을 일으킨다. 혈관에 혈전(피떡)이 생기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만큼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간을 이식하려면 수술 전후 면역거부반응을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이 교수는 “수술 전 기증자 혈액형에 대한 항체를 없애는 치료가 선행돼야 한다”며 “환자의 면역거부반응을 줄이기 위해 핵심 면역세포인 B림프구의 활성도를 억제하는 치료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술 이후에도 면역억제제를 꾸준히 복용하고, 감염에도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간 건강은 일상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술을 받은 환자뿐 아니라 건강한 일반인도 간 건강을 챙기려면 올바른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이 필수라고 말했다. 그는 “간 건강을 생각한다면 술은 아예 마시지 말아야 한다”며 “고(高)지방식, 고탄수화물 식사를 피하고 꾸준히 운동하기를 권한다”고 했다.
특히 한약이나 민간요법이 오히려 간 건강을 해칠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수술을 받은 환자가 체력이 떨어졌다고 보양식을 많이 먹으면 오히려 지방간이 생길 수 있다”며 “검증되지 않은 민간요법으로 간 기능을 해치는 환자도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선 수술하는 의사의 활동 황금기를 40대 후반으로 평가한다. 전문의로서 진료·연구 활동과 술기의 숙련도가 가장 무르익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가 딱 그렇다.
그런데 간 이식 수술에서 세계 최고인 한국에서 앞으로 이 교수 같은 외과 전문의를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다. 고된 근무환경과 낮은 수가(의료 서비스 대가), 의료 분쟁 가능성 등으로 의대생들의 외과 지망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이다. 한국간담췌외과학회에 따르면 간담췌외과 분과 자격증을 보유한 전문의는 전국에 86명만 있다.
이 교수는 “한국 외과 의사들의 술기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다”며 “후배 의사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환자를 더 많이 살리고 한국의 뛰어난 술기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