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지난 3월 28일 조선비즈와 만나 "키트루다 병용요법이 PD-L1 CPS 1~5 사이의 환자군에서 명확한 효과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급여 기준에 포함하지 않은 것은 환자들의 접근성을 위해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세브란스병원

“4기 위암 환자의 85%는 안 그래도 치료 선택지가 좁은데, 면역항암제의 건강보험(건보) 기준마저 지나치게 엄격해 많은 환자들이 치료를 포기하고 있습니다.”

라선영 연세암센터 종양내과 교수는 지난달 28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나 “PD-L1 발현율이 낮은 환자에게도 면역항암제가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도, 여전히 건보 적용이 되지 않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PD-L1은 암세포가 정상 세포로 위장할 때 쓰는 단백질이다. 암세포와 면역세포에 발현된 PD-L1 점수(CPS)가 높은 환자만 최신 면역항암제에 대해 건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의 연간 위암 발생률은 몽골·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이다. 1기 위암은 조기에 발견된 만큼 절제술로 대부분 완치할 수 있다. 2·3기 위암은 림프절까지 전이돼 수술 후 항암치료를 한다.

반면 4기 위암은 이미 다른 장기로 전이된 상태여서 수술이 어렵고 약물 치료만 가능하다. 이들의 5년 생존율은 7.5%로 10명 중 1명도 생존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완치는 꿈도 못 꾸고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게 최선이었다.

라 교수는 “최근 표적항암제에 이어 면역항암제까지 나오면서 4기 위암 환자도 치료될 길이 열렸다”며 “건보 적용 기준을 바꿔 이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4기 위암 환자를 위한 치료법으로는 세포독성 항암제가 유일했다. 세포 독성 항암제는 치료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보통 두세 가지를 같이 썼으나 정상세포까지 죽이는 부작용도 그만큼 컸다.

최근에는 허셉틴(성분명 트라스트주맙) 같은 표적치료제나 키트루다(펨브롤리주맙), 옵디보(니볼루맙) 등 면역항암제 같은 신약들이 나오면서 세포독성 항암제와 병용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표적항암제는 특정 단백질을 가진 암세포만 골라 공격한다. 정상세포는 건드리지 않아 부작용이 덜하지만, 암세포에 단백질 표적이 있는 환자만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면역항암제는 인체의 면역 체계를 강화해 암세포를 없애는 원리여서 비교적 다양한 환자에 쓸 수 있다.

라선영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교수가 지난 3월 열린 '2025 대한종양내과학회 소화기암 심포지엄(KSMO GI Cancer Symposium 2025)'에서 위암 관련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대한종양학회

다만 4기 위암 환자는 주요 발병 원인인 인간표피성장인자 수용체 2형(HER2) 단백질 발현 정도에 따라 표적항암제와 면역항암제 중 쓸 수 있는 약물이 다르다. 4기 위암 환자의 15~20%를 차지하는 HER2 양성 환자는 표적치료제와 면역항암제를 함께 쓸 수 있다. 그러나 4기 위암 환자의 85%인 HER2 음성은 표적치료제를 쓸 수 없다.

라 교수는 “표적치료제는 암세포 표면에 과발현된 단백질에 붙어 암세포 성장을 막는 원리인데, HER2 음성의 경우 HER2 단백질이 적거나 아예 없다”며 “약이 달라붙어 공격할 표적이 없기 때문에 표적치료제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4기 HER2 음성 환자에게는 면역항암제 병용이 유일한 대안이다. 그런데 이들 환자 중에서도 PD-L1 표적이 있어야만 면역항암제를 쓸 수 있다. 또 한번의 선별 과정이 필요하다.

라 교수는 “HER2 음성 환자들은 PD-L1 단백질이 많을수록 면역항암제 효과가 좋다”며 “HER2 음성 환자들은 면역항암제 처방을 위해 모두 PD-L1 검사로 선별 작업을 거친다”고 말했다.

건보 지원 대상을 PD-L1 수치로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고가의 약을 효과가 없는 환자가 쓰도록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4기 HER2 음성 환자의 면역항암제 병용 요법 비용은 3주에 550~660만원으로, 표준 치료 기간인 2년간 치료에는 2억원이 들어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2023년 9월 면역항암제 옵디보에 대해 급여 적용을 한 이후 지난 2월 키트루다에 대해서도 급여 기준을 설정했지만, 대상은 PD-L1 점수가 각각 5, 10 이상인 환자에 한정됐다. 점수가 1~4 환자군은 유일한 대안인 면역항암제를 처방받지 못한다. 이들이 전체의 약 40%에 달한다.

국내 전이성 위암 면역항암제 급여 현황./라선영 교수

그러나 라 교수가 참여한 임상시험에서 1~10 전 구간에서 면역항암제가 효과를 보였다는 결과가 나왔다. 라 교수는 “지금은 5 미만인 환자들이 건보 적용이 안 돼서 고령 환자들의 경우 자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며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며 “임상 현장과 환자 현실을 반영한 실질적인 급여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한위암학회는 지난 1월 발표한 위암 치료 가이드라인에서 PD-L1 단백질이 조금이라도 나오는 전이성 HER2 음성·양성 위암 환자라면 1차 치료에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병용 요법을 권고했다. 의료계에서는 건보 재정을 악화하지 않으면서 환자 혜택을 늘리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건보와 제약사가 각각 저소득 환자에 대해 비용을 차별 적용하는 현실적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현실적인 급여 기준을 강조하는 라 교수의 목소리엔 30년 넘게 환자 곁에서 쌓아온 치료 경험이 담겨 있다. 라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석·박사를 취득했으며, 1990년부터 30년 넘게 연세의료원 암센터 전문의로 근무하고 있다. 위암은 물론 다양한 암종을 대상으로 50건 이상의 항암제 임상시험에 책임연구자(PI)로 참여 중이다.

지난해 6월부터는 대한암학회 이사장도 맡고 있다. 암 예방부터 조기 진단, 1~4기 치료, 완화의료·호스피스까지 전 주기 연구를 진행 중이다. 25개 암 관련 학회들이 참여하는 ‘암 관련 협의체’를 주도하고 있고, 국립암센터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노인암 데이터 분석도 이끌고 있다.

라 교수는 “위암은 생물학적 특성이 매우 복잡하고 약물 반응성이 낮은 편이라 다양한 약제가 효과를 보이기는 어렵다”며 “그럼에도 그동안 많은 연구로 위암에 대한 사용도 승인된 만큼, 국내 많은 환자들이 치료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