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예방접종을 하고 있는 모습.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에 따르면 대상포진 백신은 치매 발병률을 20% 낮추는 효과가 확인됐다./뉴스1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병 확률을 20%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백신이 정확하게 어떤 원리로 치매를 막는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인체 면역력을 전반적으로 높여 치매 예방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추정된다.

파스칼 겔드세처(Pascal Geldsetzer)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영국 웨일스 지역에서 머크(MSD)의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Zostavax)’ 주사를 맞은 사람들은 7년 이내 치매 발병률이 미접종자보다 20% 낮았다”고 발표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에 감염돼 발병하는 신경질환이다. 어릴 때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수두가 되고, 어른이 되고 잠복한 바이러스가 활동하면 피부에 줄 모양 발진이 생기는 대상포진이 나타난다. 발진은 점차 수포로 변하며 통증을 유발한다. 대상포진에 걸렸을 때 느끼는 통증은 분만 통증과도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영국 웨일스의 대상포진 백신 접종 정책을 이용해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병 확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웨일스는 2013년부터 1년간 1993년 9월 2일 이후 태어난 사람들에게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특정 집단에 집중적으로 대상포진 백신 접종이 이뤄졌다면 치매 발병률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기에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실제로 1993년 9월 초 태어난 사람들은 대상포진 접종률이 47.2%로 절반에 가까우나, 이보다 일주일 일찍 태어난 사람들의 접종률은 0.01%에 불과했다.

연구진은 1925년 9월 1일부터 1942년 9월 1일 사이에 태어난 28만2541명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대상포진 백신 접종 여부에 따른 치매 발병률 차이를 분석했다.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은 7년 뒤인 2020년까지 치매 발병률이 14%였고, 백신 미접종자는 17%로 나타났다. 단순 비교하면 백신 접종이 치매 발병률을 약 20% 낮추는 효과를 보인 것이다.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는 이전에도 확인된 바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와 인간유전학센터, 런던대 공동 연구진은 지난해 7월 ‘네이처’에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10만3837명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최대 28%의 치매 예방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어릴 때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ZV)에 감염되면 온몸에 물집과 발진이 생기는 수두(varicella)가 발생한다. 바이러스는 신경세포에 잠복하고 있다가(가운데) 성인이 돼서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다시 증식해 띠 모양 물집과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대상포진(herpes zoster )을 일으킨다./MDPI

다만 대상포진 백신이 어떤 원리로 치매를 예방하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두 연구 모두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 그쳤다. 정확한 효능을 파악하려면 대규모 임상시험이 이뤄져야 한다. 참가자들을 무작위로 나눠 대상포진 백신과 가짜 약을 접종하고 장기간 관찰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대상포진 백신이 면역력을 높여 치매 예방에 도움을 준다고 추정했다. 어릴 때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자라서 대상포진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 바이러스가 신경에 잠복하고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증식해 대상포진 증상을 유발한다. 주로 면역력이 약한 고령층과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걸리기 쉽다.

대상포진은 치매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바이러스가 신경에 잠복해 있다가 증식하는 것이 대상포진의 원인인 만큼, 뇌도 대상포진의 영향을 받는다. 의료계에서는 바이러스 일부가 뇌에 잠복해 있다가 노화로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증식하면서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는 치매 증상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이 가설이 맞는다면, 대상포진 백신이 뇌에 잠복한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아 치매를 예방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누팜 지나(Anupam Jena)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같은 날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평 논문에서 “이번 연구는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상포진 백신이 인체에 잠복한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상포진으로 인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줄여 뇌 활동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전반적으로 높여 신경 염증을 줄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2025), DOI: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5-08800-x

Nature Medicine(2024),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4-03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