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개막한 미국당뇨병학회 연례 학술대회(ADA 2025)에서 미국 일라이 릴리와 암젠,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당뇨·비만 치료 후보물질의 임상시험 주요 데이터를 잇따라 발표했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비만 치료 신약의 임상시험에서 희비가 엇갈리면서 주가가 요동치고 있다.
일라이 릴리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의 혈당 개선·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하는 데 성공해, 기존 주사제 중심의 비만·당뇨 치료제 시장에 지각 변동을 예고했다. 반면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 중인 비만 신약은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음에도 시장의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았다. 암젠이 개발 중인 약물도 임상시험에서 구토 같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릴리 먹는 비만약, 게임 체인저로 부상
일라이 릴리는 하루 1회 복용하는 경구용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을 모방한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의 임상 3상 시험에서 40주 기준 체중이 평균 7.9%(7.25kg) 감소하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GLP-1은 식후 혈당 조절 호르몬인 인슐린의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의 분비는 억제한다.
오포글리프론은 식사와 무관하게 하루 한 번 먹는 약물로, 기존 주사형 비만 치료제의 대안으로 주목 받았다. 원래 일본 츄가이제약이 개발하던 후보 물질로, 2018년 릴리가 글로벌 판권을 확보해 개발하고 있다. 이번 임상시험은 미국과 중국, 인도, 일본, 멕시코 등 5개국 559명의 제2형 성인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임상시험에서 체중 감량뿐 아니라 혈당 개선 효과도 확인했다. 참가자들은 1.3~1.6%의 당화혈색소 감소를 보였고, 약 65%는 당 수치가 정상 범위로 내렸다. 당화혈색소는 최근 2~3개월 평균 혈당을 보여주는 지표다. 당화혈색소수치가 6.5%를 넘으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약물 부작용은 설사·메스꺼움·소화장애·변비 등이 주로 보고됐는데 기존 주사형 GLP‑1 치료제와 유사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다만, 이번 임상시험에서 오포글리프론의 체중 감소 효과는 젭바운드, 위고비 등 기존 비만 치료 주사제보다 낮게 나왔다. 젭바운드와 위고비의 경우 52~72주간 진행한 임상에서 용량별로 15~20% 이상의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다. 그럼에도 경구용 치료제로서 안전성과 효과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날 일라이 릴리 주가는 전일 종가 대비 1.51% 상승 마감했다.
일라이 릴리는 “오포글리프론은 주사제를 대체할 수 있을 만큼 효과적”이라며 “환자의 복약 편의성과 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GLP-1 주사제는 단백질 기반(펩타이드)이라 냉장 보관이 필요하고 제조가 까다로운 편이다. 오포글립론은 펩타이드가 아닌 작고 안정적인 소분자 화학 물질로 구성돼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고 생산도 수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는 올해 안에 오포글리프론을 비만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하고, 2026년에는 적응증을 당뇨병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노보, 임상시험 성공 발표에도 주가 ↓
노보 노디스크는 이번 ADA 2025에서 GLP-1 계열 비만약 위고비의 후속 약물인 카그리세마(CagriSema)가 임상 3상 시험에서 68주 기준 평균 20.4%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위약군은 3% 수준의 체중 감소에 그쳤다.
카그리세마는 위고비의 주성분인 세마글루타이드 2.4mg과 지속형 아밀린 유사체인 카그릴린타이드 2.4 mg 복합제로, 주 1회 피하 주사하는 방식이다. 카그릴린타이드는 췌장에서 인슐린과 함께 분비되는 호르몬인 아밀린을 모방한 약물로, GLP-1처럼 식욕을 조절하고 포만감을 높인다.
이번 임상시험은 제2형 당뇨병이 없는 비만 또는 과체중 성인 641명을 대상으로 진행됐으며, 68주간 주 1회 피하주사를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임상시험 결과, 치료 순응도가 높은 환자군은 68주간 체중을 평균 22.7% 감량했다. 참가자의 23.1%는 체중이 30% 이상 빠졌다. 체질량지수(BMI·체중을 키 제곱으로 나눈 값)가 30 미만으로 떨어진 참가자도 절반(50.7%)에 달했다.
부작용으로는 메스꺼움, 변비, 구토 등이 가장 흔하게 보고됐으며, 대부분 경증에서 중등도 수준으로 일시적이었다. 이상 반응으로 인해 치료를 중단한 비율은 카그리세마군 6%, 위약군 3.7%로, 안전성 측면에서도 양호한 평가를 받았다.
노보 노디스크는 “카그리세마는 단일제보다 우월한 체중 감소 효과를 보여 비만 치료에서 새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복합제”라며 “임상시험을 통해 카그리세마의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는 현재 FDA 승인을 받기 위해 카그리세마에 대한 후속 임상을 진행 중이며, 2026년 상업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임상시험 결과가 성공적임에도 뉴욕 증시에서 노보 노디스크 주가는 하락했다. 이번 임상 데이터가 지난달 투자자 대상 설명회에서 예측한 ’25% 체중 감량’보다는 낮아 시장에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것으로 풀이됐다. 이 회사 주가는 12일 종가 기준 81.05달러에서 연일 내려 23일 70.1달러로 하락 마감했다.
◇암젠, 한 달에 한번 맞는 주사제 부작용 부각
암젠은 이번 ADA에서 한 달에 한번 맞는 장기 지속형 주사제인 마리타이드(MariTide)의 임상 2상 시험 결과를 발표했다. 마리타이드는 혈당 조절과 신진대사에 관여하는 두 가지 경로를 표적으로 삼아 매달 1회 투여하는 비만 치료 후보물질이다.
회사는 성인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임상 2상에서 52주 간 평균 16.2%의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뇨병을 동반한 환자군에서는 12.3%~17% 수준의 체중 감소 효과가 확인됐다.
하지만 구토, 메스꺼움 같은 위장관계 부작용이 있어 임상시험 참여자들의 중도 탈락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암젠은 임상 3상에서는 용량을 8주에 걸쳐 천천히 늘리는 방식으로 투여 전략을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임상 2상에서도 급속으로 약물을 늘린 환자군은 중도 탈략률이 50%에 달했지만, 점진적으로 증량한 환자군의 중도 탈락률은 22%였다.
이번 발표에 23일 뉴욕 증시에서 암젠 주가는 전일 대비 5.31% 하락 마감했다. 암젠은 “체중 감소 효과는 기존 GLP-1 계열과 동등하거나 일부 지표에서는 더 우수했다”며 “복용 지속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임상 설계를 최적화해 상용화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