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그린바이오 산업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의료용 대마를 비롯한 그린바이오(농업 생명공학)의 신물질 개발과 제품 사업화 필요성은 큰 만큼, 그동안 군사시설 보호와 환경 규제로 성장이 더뎠던 접경지역을 활용해 신성장 동력으로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그린바이오 산업 활성화 방안 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접경지역의 규제를 완화하고 신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설립한 국회의원 연구단체 ‘접경지역 내일 포럼’이 개최했다. 의료용 대마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마(大麻)의 꽃·잎에는 환각·중독을 일으키는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 성분이 있다. 이 때문에 지금껏 옷감·종이 원료 등 외에는 재배와 사용이 모두 금지됐다. 그러나 최근 다른 핵심 성분인 칸나비디올(CBD)이 뇌전증, 파킨슨병, 우울증 등 다양한 질환에 효과를 보이며 전 세계적으로 의료용 대마 개발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THC 성분을 0.3% 미만으로 떨어뜨리는 과정을 거쳐 CBD를 주성분으로 하는 치료제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의료용 대마가 개발되면 환자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혜택을 볼 수 있다. 폐기하던 농업 부산물을 재활용하면서 제약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수입하던 의료용 대마를 국산화하면 의료비를 줄이고 수출 의약품으로도 개발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의료용 대마 시장 규모는 7년 후인 2032년 1080억달러(한화 158조4000억원)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의료용 대마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의 천연물연구소가 대표적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2020년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한 경북 안동시에서는 의료용 대마의 재배·개발·생산 기술을 실증하고 있다. KIST ​기술출자회사인 네오켄바이오는 2021년 안동 특구 공장에서 고순도 CBD를 추출하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국내 의료용 대마 추출·생산 기술은 해외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산업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없어 시장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CBD는 원료의약품이다. 해외 수출을 위해서는 제조품질관리기준(GMP)을 충족하는 시설을 구축해야 하는데, 국내에는 이를 허용하는 명확한 규정이 없어 사실상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이 불가능하다. 경북 안동의 대마 규제자유특구도 마찬가지다.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는 그동안 군사시설 보호와 환경 규제로 성장이 더뎠던 접경지역을 활성화해 CBD 생산기지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접경지역은 북한과 인접한 지역으로 대부분이 군사보호구역이자 다양한 중첩규제를 받고 있다. 경기도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 양구군과 고성군 등 15개 시·군이 속해 있다. 이 지역을 규제 샌드박스(혁신기술에 대해 한시적으로 규제를 풀어주는 제도)로 지정해, 의료용 대마 생산 실증지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접경지역에는 비무장지대(DMZ) 생태환경을 비롯한 천연생물자원이 풍부해, 의료용 대마 산업의 최적지”라며 “접경지역을 규제 샌드박스로 설정해, 그린바이오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는 동시에 접경지역의 각종 제한을 완화하는 규제 개혁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군은 2024~2028년 300억원을 투입해 연천BIX(은통일반산업단지) 내 산업화지원센터를 구축하고, 동국대와의 연계를 통해 그린바이오 산업 활성화에 필요한 법령과 규제개혁을 모색하고 있다.

유은 산업통상자원부 산업기반실 규제샌드박스팀장은 “접경지역에서의 의료용 대마 생산·재배 등 활성화를 위해서는 여러 규제샌드박스 심의를 거쳐 규제 특례, 임시 허가 등이 가능하다”면서도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러 부처와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료용 대마를 합법화한 해외 주요 국가

의료용 대마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영국·독일·호주·일본 등 60개국 이상에서 합법화됐다. 연구개발(R&D)은 물론, 재배·생산·수출까지 허용했다. 의료용 대마는 각국에서 농업 분야의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신성장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미국은 2018년 농업법 개정으로 오일·화장품·식음료·의약품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세계 최대 CBD 시장이 됐다. 지난해 기준 시장 규모는 80억달러(한화 10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 허가된 의료용 대마 치료제는 영국 제약사 GW파마슈티컬스가 개발해 2018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가 유일하다. 네오켄바이오는 고품질 CBD를 의약품 원료 수준으로 정제해, 2년 안에 에피디올렉스와 동일 성분·제형의 제네릭(복제약)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에피디올렉스의 핵심 성분인 CBD는 자연 유래 물질로, 주요 물질특허가 만료됐거나 보호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복제약 개발이 가능하다. 회사는 고가 수입약을 국산 제네릭으로 대체해, 가격도 3분의 1 이상 낮출 계획이다.

김정국 네오켄바이오 사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의료용 대마 산업은 대마의 환각 성분인 THC 때문에 국가마다 처한 환경, 풀고자 하는 사회·경제적 문제에 따라 법 개정으로 산업 형태가 구성된다”며 “민간이 아닌 정부가 주도하는 산업인 만큼, 산업 성장은 정부의 의지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