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선거 기간 동안 제약·바이오 산업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적극 육성하겠다는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공약 중 하나가 ‘신약 연구개발(R&D) 투자 연동 약가 보상’이다. 말 그대로 R&D에 많이 투자한 회사의 의약품 가격을 현행보다 높게 산정하는 구조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4일 제약·바이오 업계에선 정부가 약가 산정 제도 개편 작업에 속도를 낼 경우 R&D 투자가 많고 혁신 신약 개발 성과가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수혜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일각에선 반대로 단순 복제약 중심으로 사업을 한 기업들에는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성과 중심 약가 제도 도입 속도 붙나
R&D 투자 연동형 악가 산정 제도는 제약·바이오 업계가 대선을 앞두고 제안해, 더불어민주당 2차 공약집에 담겼다. 산업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한 정책이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도 가능성을 검토해 왔다.
국내 업계는 R&D가 저조한 요인 중 하나로 약가 제도를 지목해 왔다. 현재 약가 산정 제도는 동일 성분이나 제형 중심으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신약 개발엔 불리한 구조라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시장에서는 R&D 투자 비중이 큰 회사들을 중심으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각 회사가 공시한 사업 보고서를 분석해보면, 제약·바이오 기업 중 R&D 투자금 규모가 큰 곳은 셀트리온(068270)과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가 우선 꼽힌다. 셀트리온은 작년 R&D에 4346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이 회사 작년 매출의 약 12.2%에 해당하는 비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해 매출액의 8.6%에 해당하는 3929억원을 R&D에 썼다.
전통 제약사 중 R&D 투자액이 가장 큰 회사는 유한양행(000100)으로 작년에 2687억원을 투입했다. 이는 작년 연 매출의 13%에 해당하는 규모다. 대웅제약(069620)은 작년 매출의 18.5% 수준인 2346억원, 한미약품(128940)은 14%에 해당하는 2098억원을 각각 투입했다. 종근당(185750)의 지난해 연간 R&D 비용은 1574억원, GC녹십자(006280)는 1317억원 규모였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큰 곳은 동아에스티(170900), 한올바이오파마(009420), 한미약품, 유한양행, JW중외제약(001060), 대웅제약 등이 꼽힌다. JW중외제약은 지난해 연 매출의 30%에 해당하는 832억원을 R&D에 투입했다. 동아에스티, 한올바이오파마도 지난해 매출의 약 19%를 각각 R&D에 투자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큰 편이다. 국내사들은 대체로 매출의 약 1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과거보다 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나 글로벌 제약사에 비하면 저조한 수준이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의 경우 R&D에만 매년 조 단위를 쓴다. 미국 머크(MSD)는 지난해에만 179억달러(약 24조원)를 R&D에 투자했으며, 미국 존슨앤드존슨(J&J)는 172억 달러(약 23조원), 스위스 로슈는 130억4000만스위스프랑(약 21조원)을 각각 R&D에 투입했다.
◇제네릭도 변화 예고… 재평가 대상은 타격
R&D 투자와 연동해 약가를 책정하면 당연히 R&D 투자가 적고 단순 복제약(제네릭) 중심으로 사업하는 회사는 불리할 수 있다.
특히 제네릭에 대한 급여 재평가를 더 많이 시행해 건강보험(건보) 재원을 확보하겠다는 게 더불어민주당의 구상이다. 허가를 획득한 지 오래돼 급여 재평가 대상이 된 제네릭 약이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경우 시장에서 보다 빠르게 퇴출될 수 있다는 의미다.
현행 제네릭 급여 재평가 제도는 개편을 거쳐 2020년 7월부터 시행됐다. 심평원의 약가 재평가 대상 품목에 오른 제네릭 제품은 약효를 검증하는 평가인 생동성 시험을 직접 수행하고, 등록 원료의약품 사용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특허 만료 전 오리지널 약값 대비 53.55% 상한가를 받을 수 있다.
현재 제네릭 재평가에서 한 가지 요건이 충족되지 않을 때마다 상한가는 15%씩 인하된다. 이런 급여 재평가 제도 영향으로 제네릭 의약품 수는 2019년 4545품목에서 2023년 802품목으로 감소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아직 새 정부의 구체적인 제네릭 급여 재평가 방안이 제시되지는 않았으나, 약값 산정 기준이 보다 세분화되거나, 가격 인하 폭을 확대하는 식으로 제도가 바뀔 수 있다. 어떤 식이든 단순 제네릭 중심 회사에겐 위기가 올 수 있다.
업계는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사업 구조와 재원 마련 한계 등을 고려해 정부의 직접적인 R&D 지원책도 강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최근 투자 시장 위축과 판매 관리비 등 비용 증가 부담으로 R&D 투자 비중을 축소한 기업들도 여럿 있다. 채찍과 함께 당근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업계는 신약 개발을 하는 바이오 벤처기업을 위한 펀드를 늘리고, 초기 연구에 집중돼 있는 국가 R&D 예산 구조를 개편해 후기 개발 단계 지원을 강화해 실질적인 성과를 낼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바이오헬스 분야 투자 규모는 연간 1조7000억원 규모에 달하지만, 신약 개발에 투입되는 비중은 20% 미만이다.
한미약품 부회장을 역임한 이관순 지아이디파트너스 대표이사는 “신약 개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민관이 함께 전략을 실행하고 제도적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