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멥신 CI.

한때 코스닥 시장에서 국산 항체 신약 개발 기대주로 꼽혔던 바이오 기업 파멥신(208340)이 상장 폐지된다.

한국거래소는 코스닥시장위원회를 열고 파멥신의 상장 폐지를 의결했다고 지난 27일 공시했다. 상장 폐지일은 6월 11일이다. 29일부터 6월 10일까지 7영업일 간 정리매매가 개시된다.

거래소는 상장 폐지 사유로 기업의 계속성, 경영의 투명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상장 폐지 기준에 해당한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회사가 한국거래소에 개선 계획 이행내역서를 제출했지만, 최종 심의에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파멥신은 2008년 설립한 항체치료제 전문 신약개발 기업으로, 기술특례를 통해 2018년 코스닥에 입성했다. 기술 특례 상장은 이익을 내고 있진 않지만 기술의 혁신성 등을 인정받았을 경우 코스닥·코넥스 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제도다.

창업자인 유진산 부사장은 독일 게오르그 오거스트 대학에서 분자유전학을 전공하고 옛 LG생명과학에서 항암제 연구를 하다가 창업했다. 파멥신은 1000억개가 넘는 인간 항체 라이브러리를 기반으로 다양한 다중 항체 제조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기술과 잠재력을 인정받아 코스닥에 올랐으나 핵심 파이프라인(신약후보군) 개발 중단, 적자 경영, 자금 수혈 난항이라는 삼중고를 겪었다.

우선 핵심 파이프라인인 항암 항체 신약 후보물질 ‘올린베시맙’의 임상시험이 잇따라 중단돼 시장의 의구심을 키웠다.

2022년 재발성 교모세포종(rGBM)을 적응증으로 미국과 호주에서 진행하던 임상 2상 시험을 중단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전이성 삼중음성 유방암(mTNBC)에 대해 호주에서 진행하던 올린베시맙과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 병용 임상시험을 자진 취하했다.

회사는 “환자 모집이 어려워 연구 장기화 우려로 조기 종료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한된 인력과 비용으로 연구를 지속하기보다는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연구에 집중하겠다는 의미였다.

그 사이 재무 상태도 악화했다. 파멥신은 기술특례 상장 5년 뒤 연 매출 요건인 30억원 기준에 미달했고 법인세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도 3년 뒤 기준인 50%를 초과했다. 자금 수혈에 나섰지만 쉽지 않았다.

회사는 2023년 6월 300억원 규모 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으나 파멥신다이아몬드클럽동반성장에쿼티제1호조합·유콘파트너스의 유상증자 대급 불입 등으로 인해 공시번복(8점)과 공시불이행(3점)으로 벌점 11점을 받았다.

파멥신은 그해 12월 최승환 전 한창 대표와 에이치피바이오를 대상으로 3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진해 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이들이 납입하지 않아 철회됐다. 이 영향으로 1년간 누계 벌점이 15점을 넘어가면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다.

2023년 12월엔 파멥신 최대주주가 창업자 유진산 대표에서 타이어뱅크로 변경됐다. 김정규 타이어뱅크 회장이 본인 자금 85억 5911만원을 투입해 파멥신 지분을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잡은 것이다. 일각에선 경영 정상화에 대한 기대도 나왔지만 이후 시장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앞서 파멥신은 수익성 개선 노력 일환으로 자동차 타이어·부품 판매업을 신규 사업 목적으로 추가하고 타이어뱅크 자회사 좋은타이어와 소규모 합병도 단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무 개선에는 한계가 있었다.

파멥신은 2024년 매출액은 38억8855만원, 영업손실 77억1300만원, 순손실은 49억2400만원이다. 작년 연구·개발비가 약 50억원으로, 매출 대비 129% 수준이다. 자본총계는 473억원, 부채총계는 172억원으로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평가되지만 상장 폐지 위기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해 7월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파멥신에 대한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 파멥신은 그해 8월 이의 신청을 해, 개선 기간을 부여 받았으나, 이번에 개선 계획 이행 내역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최종 상장 폐지가 결정됐다.

파멥신 창업자인 유진산 부사장은 “코스닥시장위원회의 상장 폐지 결정에 충격이 크다”며 “지난 17년 동안 회사는 감사의견거절, 배임, 횡령 같은 것이 단 한번도 없었고, 27일 기준 현금성 자산이 500억 가까이 있다”고 했다.

유 부사장은 그럼에도 개선 계획에 담은 기술 이전이 이행되지 않아 거래소가 상장 폐지를 결정했다고 봤다. 그는 “기존 파이프라인 기술 이전을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라며 “파멥신이 좀비 기업으로 여겨져 상장 폐지 돼야 한다면, 국내 많은 바이오사들이 줄줄이 상장 폐지될 수 있고, 이는 한국 바이오 생태계 고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