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오는 25~30일(현지 시각)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미국암연구학회(AACR) 2025’에 총출동한다.
AACR은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유럽종양학회(ESMO)와 함께 꼽히는 세계 3대 암학회다. 매년 2만명 이상의 기업 관계자와 연구자들이 참여해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공유한다.
국내 기업엔 기술 수출 기회의 장(場)이기도 하다. 올해 AACR 현장에서는 암세포에 약물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모달리티 기술과, 다양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할 수 있는 플랫폼(기반기술)을 활용한 신약 연구 사례들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암세포 공격력 높이는 다중항체·ADC
최근 글로벌 대형 제약사들은 모달리티·플랫폼 기술 인수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모달리티란 의약품이 표적을 찾아 공략하는 방법 또는 약물이 약효를 나타내는 방식을 뜻한다. 플랫폼은 기존 의약품에 적용해 다수의 후보 물질을 도출할 수 있는 기반기술을 의미한다.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는 두 기술은 특정 약물이나 질병에 국한되지 않는 무한 확장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이중(다중)항체와 항체약물접합체(ADC) 기술이다. 단일항체 치료제는 암세포의 항원 하나만 공략해 면역반응을 일으키지만, 다중항체는 여러 항원에 작용하도록 만든 치료제다. 여러 곳을 동시에 공략하므로 치료 효과가 더 높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셀트리온(068270)그룹이 다중항체 항암 신약과 ADC 플랫폼을 개발 중이다. 셀트리온은 미국 에이비프로(ABPRO)와 같이 개발하는 다중항체 항암제 후보물질인 CT-P72의 전임상 결과를 27일 AACR 현장에서 처음 공개한다. 에이비엘바이오(298380)와 유한양행(000100)도 AACR에서 같이 개발한 이중항체 항암 신약 ABL104의 비임상 데이터를 포스터로 발표한다.
ADC는 항체에 약물을 붙여 정확히 암세포에만 전달하는 치료 기술이다. 마치 미사일(항체)이 표적(암세포 항원)을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 탄두(약물)를 터뜨리 것과 흡사하다.
리가켐바이오(141080)가 ADC 플랫폼을 수출한 영국 익수다 테라퓨틱스(Iksuda Therapeutics)와 체코 소티오 바이오텍(Sotio Biotech)도 이번 AACR에서 각각 ADC 항암제 후보에 대한 전임상 결과를 발표한다. 셀트리온제약(068760)은 원리가 다른 항암제를 결합한 이중약물 ADC 플랫폼 CTPH-02를 포스터로 발표할 예정이다. ADC는 항체·약물과 이들을 연결하는 링커가 연결된 형태인데, 두 종류의 약물을 결합해 항체와 접목하면 더 강력하고 정확한 치료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알려졌다.
메신저리보핵산(mRNA)을 활용한 항암제 연구도 늘고 있다. mRNA는 단백질 합성 정보를 담은 유전물질이다. mRNA 치료제는 인체에 들어가 항원 단백질을 합성해 면역반응을 유도한다. 환자의 암세포에 있는 돌연변이 항원을 선별하고 이를 합성하는 mRNA를 만들어 주입하면 환자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국내 기업 중에선 한미약품(128940)이 mRNA 항암 신약을 개발 중이다. 한미약품은 이번 AACR서 신약 후보물질 7종에 대한 비임상 연구 결과 11건을 공개하는데 그중 하나가 mRNA 항암 신약 연구 성과다. mRNA로 인체에 암 억제 단백질인 p53 단백질을 발현시켜 암세포를 죽이는 원리다.
◇진단 정확도 높이고 최적 항암제 예측
암 진단과 치료 정확성을 높이는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도 이번 학회에서 조명을 받을 예정이다. 각 회사는 이번 AACR을 통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에 기술을 수출하고 연구 협력을 확대하는 기회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진씨커는 29일 AACR 무대에 올라 핵심 기술인 ‘MUTE-Seq’를 발표한다. MUTE-Seq은 진씨커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초정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FnCas9-AF2’를 활용해 암세포의 DNA를 초고감도로 검출하는 기술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는 원하는 유전자를 자르는 효소 복합체이다.
진씨커 공동 대표인 허준석 고려대안암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MUTE-Seq 기술은 기존 방법으로는 검출이 어려웠던 극소량의 돌연변이 암 유전자를 민감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진씨커는 자사 유전자가위가 기존 기술보다 단일 염기 변이를 더욱 정확하게 구별하며, 엉뚱한 곳을 자르는 오류를 획기적으로 줄였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기업 루닛(328130)은 루닛 스코프를 활용한 최신 연구성과 7건을 공개할 예정이다. 루닛 스코프는 암 환자의 조직을 AI로 분석해 면역항암제에 대한 환자의 반응을 예측한다. 덕분에 치료제 약효를 볼 수 있는 환자를 미리 선별할 수 있다.
루닛은 미국 제넨텍,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같이 AI의 효능을 입증한 연구 성과들을 발표한다. 서범석 루닛 대표는 “이번 결과들은 루닛 스코프가 희소암과 예후가 안 좋은 암종에서도 유의미한 치료 예측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