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섭 일렉셀(elecell)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홍릉에 위치한 서울바이오허브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손상된 세포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주면 서로 신호를 전달해 자연치유 되도록 유도하는데, 이를 활용한 의료 디바이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염현아 기자

“식물이 뿌리로 물을 마시고 잎으로 내뱉는 ‘증산 작용’을 모사해, 몸 안의 자연 치유 세포를 전기 자극으로 깨우는 의료 솔루션을 개발 중입니다.”

한형섭 일렉셀(elecell) 대표는 지난 2일 서울 홍릉 서울바이오허브에서 만나 “손상된 세포에 미세한 전기 자극을 주면 서로 신호를 전달해 자연치유 되도록 유도하는데, 이를 활용한 의료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일렉셀은 한국과학기술원(KIST) 생체재료연구센터 한형섭 박사가 지난해 3월 창업한 재생의학 스타트업이다.

일렉셀의 핵심 기술은 크게 두 가지다. 식물이 뿌리에서 잎까지 수분을 끌어올리는 증산 작용 원리를 따라한 수분 기반 전력 발생 기술과, 이를 통한 미세 전기자극으로 세포를 손상시키는 활성산소를 없애고 세포 증식을 유도하는 기술이다. 전기자극을 받은 세포는 빠르게 회복하며, 염증을 억제하고 조직을 재생힌다.

원천기술은 지난 2023년 KIST 생체재료연구센터에서 탄생했다. 당초에는 증산 작용을 모방한 전력 기술을 폐수 정화 시설에 적용하려 했지만, 한 대표는 바이오 분야에 더 활용도가 높다고 판단했다. 그는 동료들의 권유로 본격적인 제품화와 임상 개발을 위해 직접 창업했다.

한 대표는 “이 기술은 단순한 전기자극이 아니라, 우리 몸이 원래 갖고 있는 생체 전류의 흐름을 보조하는 방식”이라며 “몸 안의 자연 치유 메커니즘을 전기로 돕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일렉셀이 미세 전력 원천기술을 활용한 첫 분야는 당뇨병성 족부 궤양, 욕창, 화상 등으로 인한 만성 상처를 치료하는 의료기기였다. 특히 회사는 환자가 많은 당뇨병성 족부 궤양에 주목하고 있다.

일렉셀이 개발한 만성 상처 치료 치료 패치 샘플./염현아 기자

당뇨병 환자의 15% 이상이 족부 궤양에 걸린다. 작은 상처가 자칫 다리를 절단하는 일을 초래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질병이다. 당뇨병에 걸리면 신경이 손상돼 감각이 약해진다. 상처가 나도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또 당뇨 환자는 혈액에 당분이 많아 피가 잘 흐르지 않는다. 자연히 상처를 치료할 세포들도 이동하기 어렵다.

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에는 현재 창상피복제나 항연고제 등이 쓰이지만, 감염과 염증, 통증을 줄이는 데 그친다. 일렉셀이 개발 중인 기기는 일반 패치 형태로, 활성산소를 없애면서 치료용 세포 증식을 동시에 일으킨다. 시판 중인 습윤 밴드처럼 습한 환경을 만들어 외부 감염은 물론 흉이 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한 대표는 “만성 상처의 주범은 상처에 계속 염증 반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라며 “이 패치를 상처 부위에 붙이면 미세한 전기가 흘러나와 주변 세포들을 자극해 활성산소를 제거한다”고 말했다.

미세 전류는 섬유아세포를 증식시켜 상처 부위에 혈관이 새로 생기도록 한다. 한 대표는 “미세 전류로 점점 새살이 차오르는 회복 반응이 일어난다”며 “생쥐 실험에서 기존 치료법보다 최대 9배 빠른 속도로 상처가 회복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일렉셀은 국내 제약사와 협업해 오는 2027년 만성 상처 치료 패치를 상용화하고, 크림 제형으로도 개발해 환자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이다.

상처·발진이 난 쥐에 일렉셀의 만성 상처 치료 패치(Patch)와 일반 상처 치료용 밴드(Control)를 붙인 뒤 14일간 치료 효과를 비교했다. 상처 깊이에 따라 4가지 패치 버전으로 실험했다./일렉셀

일렉셀의 원천 기술을 활용하는 분야는 또 있다. 근육이 빠지는 근감소증 예방 기기이다. 근감소증은 최근 선풍적인 인기를 얻은 위고비·마운자로 등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계열 비만 치료제의 최대 부작용으로도 꼽힌다.

일렉셀은 중환자실에 입원한 중증 환자들의 근감소증에 주목했다. 몸에서 근육이 빠지면 면역력이 떨어져 바이러스 감염, 낙상 사고 위험이 커진다. 근육의 대사 조절 기능도 떨어져 당뇨병·고지혈증 등과 같은 합병증이 생긴다. 고령자일수록 사망 위험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일렉셀은 근육층에 최적의 미세 전류 자극을 줘 근육이 빠지는 것을 돕는 기술로 발전시켰다. 이미 동물실험에서 근육 손실 방지 효과를 입증했다.

사람이 깁스를 착용하면 근육이 빠진다. 쥐에게도 일정 기간 깁스를 장착해 근감소증이 나타나도록 했다. 다른 쥐에도 깁스을 입히되, 이번엔 최적화된 미세 전류 자극 소재를 넣었다. 실험 결과 전기 자극이 쥐의 근감소증을 80% 이상 예방하는 결과를 확인했다.

일렉셀이 개발한 전류 자극 기술의 근감소증 예방 효능을 알아보기 위해 진행한 동물실험. 일정 기간 깁스를 입혀 근감소증이 나타난 쥐(위)와 미세 전류 자극 소재를 넣은 깁스를 착용한 쥐(아래)의 걷는 모습을 비교했다./일렉셀

한 대표는 “이 기술은 근육량을 늘려주기보다, 근육량이 줄어드는 것을 막는 효과”라며 “올해 하반기에 시작될 서울아산병원 연구자 임상시험을 통해 사람에게도 이 같은 효과가 나타나는지 검증한 뒤 내년 상반기에 상용화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회사는 팔·다리 등 신체 부위별로 착용할 수 있는 깁스 형태의 의료기기로 개발 중이다.

일렉셀은 투트랙 전략으로 사업을 펼칠 예정이다. 만성 상처 치료 패치와 근감소증 예방 깁스의 상용화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빠르게 시장에 출시할 수 있는 화장품에도 도전하고 있다. 회사는 피부 재생 마스크팩을 비롯해 생체유사 전기자극 기반의 피부 재생·기능성 화장품으로 매출을 내겠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