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의 대마 규제자유특구 내 스마트팜에서 의료용 대마(CBD)가 자라고 있다./경북대마규제자유특구

국내에서 허가된 의료용 대마 치료제는 뇌전증 치료제 ‘에피디올렉스’가 유일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9년부터 환자 요청에 따라 특례 수입을 허가하고 있지만, 문제는 가격이다. 전량 미국에서 수입되고 있는 에피디올렉스는 워낙 고가인데, 최근 환율 상승으로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환자의 혜택을 늘리고 의료비 절감 효과를 위해서는 의료용 대마 원료인 칸나비디올(CBD)의 ‘국산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탓, 기술 있어도 CBD 상용화 아직

경북 안동의 대마 규제자유특구는 의료용 대마의 국산화를 위한 전초기지로 2020년 출범했지만, 정작 상용화는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들은 의료용 대마의 원료인 CBD를 연구·개발(R&D)하고 있지만, 현행법상 실제 생산과 판매는 불가능하다. 마약류관리법 하위 법령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 범위 내에서만 실험·연구가 가능하다.

국내 업체들이 의약품을 생산하고 해외 수출을 하기 위해서는 각자 제조품질관리기준(GMP) 시설을 갖추고 식약처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선 법 개정 없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국내 제약사와 스타트업들이 CBD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현재 안동 특구에는 유한양행(000100)의 건강기능식품·화장품 자회사인 유한건강생활, 대웅제약(069620)의 R&D 전문 계열사인 대웅테라퓨틱스, 한국콜마(161890), HLB생명과학(067630) 등 제약·화장품 업체들과 CBD 스타트업들이 입주해 있다.

유한건강생활은 CBD 추출과 제형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21년 CBD 크림 제형의 유효성·안전성 평가를 완료했고, 2023년부터는 신규 제형 개발을 추진 중이다. HLB생명과학은 CBD 계열 치료제가 어떤 질환에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암, 뇌전증, 치매, 파킨슨병 등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이 목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기술출자회사인 네오켄바이오는 밀폐형 마이크로웨이브(MW) 기반의 CBD 추출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전자레인지처럼 밀폐된 공간에서 고주파 전자파를 쏴 대마에 있는 고순도 CBD를 빠르고 안정적으로 추출하는 방법이다. 열을 가해 추출하던 기존 방식보다 빠르고, 열로 인한 성분 손실도 적은 게 강점이다.

네오켄바이오는 고품질 CBD를 의약품 원료 수준으로 정제해, 2년 안에 에피디올렉스와 동일 성분‧제형의 제네릭(복제약)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에피디올렉스의 핵심 성분인 CBD는 자연 유래 물질로, 주요 물질특허가 만료됐거나 보호 범위가 제한적이어서 복제약 개발이 가능하다. 회사는 고가 수입약을 국산 제네릭으로 대체해, 가격도 3분의 1 이상 낮출 계획이다.

네오켄바이오의 핵심 기술인 밀폐형 마이크로웨이브(MW) 기반의 CBD 추출 기술 설명 그림./네오켄바이오

◇의료용 대마 국산화, 건보 재정에도 도움

CBD를 국산화할 경우 건강보험(건보) 재정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의 건보 재정은 이미 위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치료비 증가로 매년 부담이 가중되는 추세다. 지난해 건보 재정은 4조100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오는 2026년 적자로 전환한 뒤 2028년 적자가 1조60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21년, 희소 난치성 뇌전증 질환인 ‘드라벳 증후군’과 ‘레녹스-가스토 증후군’ 환자에게 1병당 120만원 드는 에피디올렉스의 급여를 인정했다. 환자 치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지만, 그만큼 건보 재정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국산 의료용 대마 치료제는 에피디올렉스처럼 고가 의약품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 이스턴미시간대(EMU) 연구진은 의료용 대마가 합법화된 뒤 7년 후 미국 건보 시장에서 의약품 지출이 평균 22%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의료용 대마가 마약성 오피오이드 진통제나 항경련제 등 기존 고비용 처방약을 일부 대체하면서 의료비 절감 효과를 냈다.

국내에서도 고순도 CBD가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치료제가 건보 급여 대상으로 확대된다면, 환자 부담은 물론, 건보 재정의 지속 가능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홍승봉 대한뇌전증학회 명예회장(강남베드로병원 신경과 원장)은 “의료용 대마 생산에 대한 규제를 개선해 제네릭이나 신약으로 국산화하면 더 많은 환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며 “1년에 국민 세금을 100억원가량 절감하는 효과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 자료

International Journal of Drug Policy(2023), DOI: https://doi.org/10.1016/j.drugpo.2023.104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