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약사 화이자(Pfizer)가 먹는 비만 치료제 개발 중단을 선언했다. 임상시험 진행 중 일부 환자에서 간 독성 부작용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먹는 약은 비만 치료제의 시장의 판도를 바꿀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누가 먼저 성공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화이자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로 개발해온 ‘다누글리프론(danuglipron, 개발코드명 PF-06882961)’의 개발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14일(현지 시각) 밝혔다.
화이자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부작용은 주로 간 효소 상승이었다. 임상시험에 참가한 환자 중 1400명에게서 이런 증상이 확인됐다. 그중 1명은 간 손상이 확인돼 해당 임상 중단을 결정했다.
화이자가 먹는 비만약 개발 중단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화이자는 1일 2회 먹는 방식으로 먹는 비만약 개발을 진행했다가 2023년 12월 한 차례 중단한 바 있다. 임상 2b상 시험에서 체중 감소 효과를 보였지만, 메스꺼움·구토·설사를 비롯한 부작용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이다. 임상시험 참가자들이 투약을 포기하자 화이자는 임상 3상 단계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화이자는 이후 1일 1회 투약 방식의 다누글리프론 개발에 재도전해 지난해 7월부터 임상시험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작용 문제로 두 번째 제동이 걸린 것이다. 화이자는 “다누글리프론에 대한 모든 임상시험 데이터와 최근 규제기관의 의견을 검토한 결과 다누글리프론 연구 개발을 중단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밝혔다.
먹는 비만약 개발에 뛰어든 회사는 여럿 있다.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현재 8조원 안팎인 세계 비만약 시장은 2030년 130조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먹는 약 개발은 성장하는 비만약 시장 내에서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열쇠로 통한다.
현재 세계 비만 치료제 시장은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티르제파타이드) 양강 구도인데, 모두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GLP)-1 계열 주사제이다. 환자가 직접 일주일에 한 번 주사를 놓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먹는 경구용 비만약은 환자 편의성이 커져 시장에서 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선 접근성도 커져 시장 수요가 더 늘 수도 있다. 또 주사형 치료제에 비해 대량 생산이 용이해 약값도 낮출 수 있다. 펜 주사기는 일반 주사기보다 단가가 10배 이상 높다.
현재 경구용 GLP-1 제제로는 노보 노디스크가 개발한 리벨서스가 있지만, 당뇨병 치료제로만 허가를 받은 상태다. 미국 제약사 암젠도 먹는 비만약 개발에 나섰다가 지난해 개발을 중단하고, 월1회 주사 투여하는 방식의 마리타이드를 개발하기로 경로를 바꾼 상태다.
일라이 릴리는 먹는 비만약으로 개발 중인 오르포글리프론의 임상 3상 시험 결과를 이르면 상반기 중 발표할 예정이다. 앞선 임상 2상 시험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다. 복용 36주차까지 체중이 최소 10% 감소한 비율은 오르포글리프론 투여군이 46~75%, 위약군은 9%로 나타났다.
중국 항서제약은 먹는 비만약 후보물질 2개를 각각 임상 2상, 3상 단계에서 미국 헤라클레스CM뉴코에 기술 이전해 개발하고 있다.
화이자는 다른 계열의 먹는 비만 치료제 개발에 도전한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포도당 의존성 인슐린 친화 폴리펩티드 수용체(GIPR)를 억제하는 경구용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GIPR 길항제(억제제)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지방 축적을 막는 효과가 있다. 현재 임상 2상 시험을 완료하고 데이터를 분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회사들도 먹는 약으로 비만 치료제를 개발 중이지만, 해외 기업에 비해 개발 초기 단계다.
일동제약(249420)이 저분자 화합물을 활용한 경구용 약물 ‘ID110521156’를 연구하고 있고, 디앤디파마텍(347850)은 미국 파트너사 멧세라와 함께 ‘DD02S’의 임상 1상을 지난해 11월부터 진행 중이다. 디앤디파마텍은 펩타이드 기반 경구용 비만약을 개발하고 있다. 펩타이드는 단백질을 이루는 물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