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아키 스가 일본 도쿄대 교수가 3일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열린 한국생물공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및 국제심포지엄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거대고리 펩타이드는 새로운 형태의 생물학적제제 소재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대전=이병철 기자

“거대고리 펩타이드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생물학 제제라는 의미에서 ‘네오바이오로직스(NeoBiologics)’라고 불립니다. 다양한 펩타이드를 항체처럼 만들어 신약 개발을 하는 것도 가능해질 겁니다.”

히로아키 스가(Hiroaki Suga) 일본 도쿄대 교수는 3일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열린 ‘한국생물공학회 춘계학술대발표대회·국제심포지엄’에서 기자들과 만나 거대고리 펩타이드 연구 동향을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펩타이드는 아미노산들이 연결된 짧은 사슬이다. 이들이 모여 모든 생명현상을 관장하는 단백질이 된다. 거대고리 펩타이드는 특이하게 고리 구조를 갖고 있다. 아미노산 수십 개로 이뤄져 단백질보다는 크기가 작고, 전통 의약품 소재인 저분자보다는 크기가 크다.

스가 교수는 “거대고리 펩타이드는 그 자체로 뛰어난 활성을 내거나 항체, 바이러스 전달체와 결합해 활성을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가령 뇌에 유전자를 전달하는 전달체로 사용해 퇴행성 뇌 질환을 치료제나 골격계 질환을 위한 재생의학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생명공학기업 머크는 홈페이지에서 거대고리 펩타이드를 소개하면서 ‘골디락스’라고 표현했다. 골디락스는 경제학과 천문학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로, 너무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최적의 상태를 의미한다. 거대고리 펩타이드가 저분자와 단백질 생물학 제제의 중간 크기로, 각각의 장점을 모두 갖고 있다는 의미다.

스가 교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생화학 분야의 석학이다. 주요 연구 분야는 항체, 리보핵산(RNA) 등 생체 분자다. 2023년에는 RNA 연구로 노벨상의 관문으로 불리는 울프 화학상을 수상했다. 울프상은 수상자의 3분의 1이 노벨상을 받았을 정도로 과학기술계에서 권위 있는 상이다.

그는 최근에는 거대고리 펩타이드 연구로 제약·바이오 산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스가 교수는 2006년 펩티드림을 창업하고 일본에서 가장 성공적인 바이오 스타트업으로 성장시켰다. 펩티드림은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 로슈와 잇따라 계약을 맺고 거대고리 펩타이드 연구를 하고 있다.

스가 교수는 두 번째 창업 기업인 미라 바이오로직스에서도 거대고리 펩타이드를 이용한 신약 개발 사업에 나서고 있다. 외부에 공개할 수는 없으나, 이미 대형 글로벌 제약사 두 곳과도 협력 중이라고 소개했다. 주력 연구 분야는 뇌 질환 치료를 위한 전달체 개발이다. 거대고리 펩타이드의 장점을 활용해 뇌 혈관 장벽(BBB)은 통과하면서도 효능은 뛰어난 뇌 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거대고리 펩타이드 신약 개발에 도전하는 기업은 스가 교수의 회사 외에도 여럿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제약사 시네론이다. 시네론은 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로부터 최대 34억달러(약 5조원) 규모의 거대고리 펩타이드 신약 개발 계약을 맺으며 기술력을 인정 받고 있다.

그는 거대고리 펩타이드가 상용화된다면 주사제로만 개발할 수 있던 항체 의약품을 먹는 약으로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항체 의약품은 표적을 정확하게 공격해 질병 치료 효능이 우수하면서도 부작용은 적다. 하지만 항체는 단백질이라서 효소에 잘 분해된다. 거대고리 펩타이드를 이용하면 소화 효소에 영향을 받지 않아 먹는 약으로 개발할 수 있다.

스가 교수는 “거대고리 펩타이드는 고리 형태로 단백질 분해 효소에 의해 거의 분해되지 않아 먹는 약은 물론, 생체 내에서 장기간 유지되는 형태에 특화돼 있다”며 “이 같은 특성은 제약 산업에서 매우 강력한 장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