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몇 방울만으로 알츠하이머병을 진단하고, 얼마나 진행됐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검사법이 개발됐다. 의사가 환자들의 각 진행 단계에 적합한 맞춤형 치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스탠포드대와 스웨덴 룬드대 공동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꼽히는 타우 단백질의 축적 정도를 혈액으로 정밀 측정이 가능한 혈액 검사 기술을 개발했다”고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에 지난 31일(현지 시각) 밝혔다.
타우 단백질은 아밀로이드 베타(Aβ) 단백질과 함께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꼽힌다. 타우는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원래 위치에서 떨어져 나와 세포 내부에 쌓이면서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아밀로이드 베타는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신경세포에 손상을 준다.
기존 혈액검사는 단순히 알츠하이머병 여부를 판별하는 수준에 그친다. 알츠하이머병 진단법으로 주로 쓰이는 양전자단층촬영(PET)은 아밀로이드 베타나 타우 단백질이 쌓여 있는 것을 정밀하게 확인할 수는 있지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게 단점이다. 이번에 개발한 기술은 간단한 방법으로 알츠하이머병의 초기 단계부터 경도인지장애, 치매 단계에 이르기까지 질환의 진행 정도를 구체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연구진은 증상이 없는 일반인과 초기 단계인 경도인지장애, 심각한 치매 증상의 후기 단계까지 다양하게 분포된 참가자 902명의 혈액을 분석했다.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혈액에서만 타우 단백질 조각이 검출되며, 단백질의 농도가 뇌 속 타우 엉킴과 치매 증상의 심각도와 비례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다른 질환으로 인해 인지 장애가 있는 사람에서는 타우 농도가 낮은 수치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 혈액검사를 통해 환자들의 알츠하이머병 진행 단계를 92%의 정확도로 판별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혈액검사를 활용하면 PET 검사 없이도 환자에게 맞는 알츠하이머병 치료제를 처방할 수 있어, 의료 비용 절감과 신속한 진단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와 미국 일라이 릴리의 ‘키썬라(도나네맙)’는 모두 알츠하이머병 초기 환자의 진행을 늦추는 효과가 있다. 신약을 환자에 처방하려면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진행 단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연구를 이끈 오스카 한손(Oskar Hansson) 룬드대 신경학과 교수는 “최근 여러 국가에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승인되면서 높은 정확도와 낮은 비용의 효율적인 알츠하이머병 진단이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논문 공동 저자인 스탠퍼드대의 토니 와이스-코레이(Tony Wyss-Coray) 교수는 “이 혈액검사를 통해 환자 개인에게 가장 적합한 약물을 식별하는 것은 물론, 치료제 개발 시 적절한 참가자를 선정해 정확도 높은 임상시험 결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 혈액 검사를 상용화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타라 스파이어스-존스(Tara Spires-Jones) 영국 에든버러대 신경학과 교수는 “현재로서는 실험실에서 연구·분석해본 결과인 만큼, 임상 현장에서 간편하고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상용화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고 자료
Nature Medicine(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91-025-036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