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바이오위원회(이하 바이오위)가 지난달 23일 출범했다. 국가바이오위는 바이오 분야 국가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바이오산업, 연구개발(R&D) 정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았다.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와 기관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보건·의료, 식량, 자원, 에너지, 환경 등 바이오 전 분야에 대한 민·관의 역량을 결집하는 역할을 맡는다.

국내 바이오 업계는 국가바이오위 출범에 큰 기대를 걸어 왔다. 바이오 산업은 다른 분야와 비교해 엄격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바이오 산업이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과학적으로 안전에 문제가 없다고 알려진 기술도 한국에서는 허용되지 않거나, 사업이 어려울 정도로 강한 규제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상엽 국가바이오위원회 부위원장(KAIST 연구부총장)이 지난 11일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바이오위의 첫 과제는 규제 개선이 될 것"이라며 "올해 내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겠다"고 말했다./한국과학기술원(KAIST)

합성생물학과 대사공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이상엽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부총장은 국가바이오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지난 11일 대전 KAIST 캠퍼스에서 만난 이 부 위원장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계에서 여러 의견을 많이 받아뒀고 국가바이오위가 처음으로 논의할 과제도 규제 개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제 같은 기술은 너무 중요하다”며 “하지만 유전자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으로 넘어가는 등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부분을 막기 위해 전향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지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일찌감치 줄기세포와 유전자치료제 등 차세대 기술을 선제적으로 육성하며 글로벌 경쟁력을 쌓고 있다. 세포치료를 받기 위해 2022년 일본을 방문한 환자는 7만3000여명에 달한다. 2014년 의료기관에서 제한 없이 세포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시행했으며, 과학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세포치료는 의약품이 아닌 ‘첨단재생의료 제품’으로 규정해 허가를 받기 전에도 시술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은 그간 규제에 가로 막혀 전문 인력이 이탈하고, 최근 10년 내 새로운 치료제 허가가 없었다. 한국도 이달부터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첨생법)’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일부 규제를 완화한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임상 단계에서도 세포치료제와 유전자치료제를 치료 목적으로 쓸 수 있게 했다.

이 부위원장은 바이오산업 규제 개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무분별한 규제 개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규제와 진흥의 균형’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의료진이 차바이오그룹 바이오뱅크 내 냉동탱크에서 줄기세포를 꺼내 확인하고 있다. 바이오뱅크는 줄기세포를 비롯해 제대혈, 난자·정자, NK세포 등 인체세포를 보관하는 곳이다. 차병원이 운영하는 차움에선 외국 부호와 유명 스포츠 선수들의 줄기세포를 보관하고 있다. 나중에 병이 들면 치료제로 쓴다. /차바이오그룹

이 부위원장은 “규제와 진흥은 균형을 맞춰서 잘 봐야 한다”며 “특히 사람의 몸을 다루는 레드바이오(바이오의약품 산업)는 무분별한 허가로 부작용이 나타나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며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하는 도박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규제의 관점에서 보되 과학적인 근거를 기반으로 추진하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라고 말했다.

유전자 변형 생물(GMO)과 유전자 교정 생물(GEO)에 대한 규제 개선 의지도 드러냈다. GMO와 GEO는 살아 있는 생명체의 유전자를 원하는 대로 조작해 원하는 특성을 만드는 기술이다. 주로 제약, 바이오화학, 농업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 부위원장은 “GMO 국내 도입 당시 소통 방법의 문제로 안전성에 대한 오해가 많이 쌓여 있다”며 “규제가 필요한 분야는 맞지만, 문제는 진흥 정책은 전혀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크리스퍼 유전자가위로 유전자를 제거하는 방식의 유전자 편집은 안전성이 높은 만큼 우선적으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의지도 보였다. 그는 “과학계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아 공감대를 만들고, 국민들과 소통해 규제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기초 과학 연구개발(R&D)을 통해 바이오산업에서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의미하는 ‘NFTIPS(Non-Fungible Technology, Industry, Products, Service)’이라는 용어를 제시하며, 바이오산업에서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새로운 기술 개발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지난달 23일 열린 국가바이오위원회 출범식. 왼쪽부터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 최 권한대행, 고한승 한국바이오협회 회장,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연합뉴스

이 부위원장은 “최근 미국의 관세 논란과 석유화학 산업의 부진 등 여러 사건 모두가 한국이 대체 불가한 기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을 대체할 나라가 없듯 바이오산업에서도 이 같은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오위 위원 중 국내 바이오산업계 관계자가 과학기술계에 비해 적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산하에 설치하는 분과위원회, 특별위원회, 협의체 등 기구를 통해 산업계의 참여를 늘리겠다고 했다. 그는 “구성원 전부가 산업계 위원으로만 이뤄지는 협의체도 구상하고 있다”며 “산업계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많이 듣고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올해 내로 가시적인 성과 2개를 내는 것이 바이오위의 첫 목표”라며 “바이오위 설립으로 산업계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고, 앞으로 더 많은 건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