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포스텍에서 만난 한세광 화이바이오메드 대표 겸 포스텍 교수는 "녹내장 진단과 치료를 위한 스마트 콘택트렌즈를 2~3년 내 상용화할 것"이라 밝혔다./포스텍

진단은 물론 치료까지 가능한 ‘스마트 콘택트렌즈’가 현실로 다가왔다. 국내 의료기기 스타트업인 화이바이오메드는 안압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필요할 경우 자동으로 약물을 방출해 녹내장 치료까지 돕는 콘택트렌즈를 개발하고, 세계 최초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다.

화이바이오메드는 한세광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가 손윗동서인 박원진 원진성형외과 원장과 함께 2014년 설립한 회사다. 대학의 연구 성과를 직접 실용화하겠다는 목표로 출발해, 현재는 웨어러블(wearable·착용형) 의료기기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지난 11일 포스텍에서 만난 한세광 화이바이오메드 대표는 눈에 착용하는 콘택트렌즈는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확장성이 크다“며 ”특히 녹내장처럼 눈 자체의 압력 변화로 진단이 가능한 안과 질환에는 렌즈형 센서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안압 측정부터 치료까지 렌즈 하나로

녹내장은 시신경에 이상이 생기거나 안압이 높아져 시야가 좁아지는 질환이다. 심할 경우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환자는 평생 안압을 관리해야 한다. 이런 환자에게는 실시간으로 안압을 측정하고 치료하는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안압 측정 센서는 미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 상용화된 사례가 있지만, 적절한 약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화이바이오메드는 녹내장 진단을 위해 금 나노와이어를 사용했다. 안압이 상승하면 안구의 곡률이 미세하게 변하고, 이에 따라 콘택트렌즈에 부착된 나노와이어들이 느슨해지면서 전기저항이 변한다. 이 저항값을 측정해 안압 변화를 실시간으로 감지할 수 있다.

금 나노와이어 센서는 기존 금속 링 기반 센서와 비교해 민감도와 투명도 모두 뛰어나다. 콘택트렌즈에 들어간 금속 링은 육안으로도 뚜렷하게 보이는 반면, 나노와이어 센서는 반투명하거나 거의 투명하다. 또 금속 링보다 나노와이어의 반응성이 높아 안압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고 회사는 밝혔다.

화이바이오메드는 렌즈 테두리에 약물 저장소를 넣어 안압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아지면 자동으로 약물을 방출하도록 설계했다. 저장소 개수와 약물 용량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조절할 수 있다. 진단뿐 아니라 실시간 치료까지 가능한 콘택트렌즈는 전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없다고 회사는 밝혔다.

한 대표는 “녹내장 진단·치료용 콘택트렌즈의 두께는 0.15㎜로 일반 콘택트렌즈 두께인 0.1㎜보다 조금 두껍지만, 실리콘 하이드로겔 소재를 사용해 착용감을 높였다”며 “하이드로겔은 산소 투과율이 높아 장시간 착용해도 눈의 충혈이나 건조가 덜하다”고 말했다. 하이드로겔은 고분자 물질이 그물처럼 이어진 물질로, 수분이 많아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고 빛이 잘 통과해 투명하다.

녹내장 환자의 안압 모니터링 및 안압 조절 약물 전달 피드백 시스템 모식도./자료=포스텍

◇글로벌 헬스케어 시장 정조준

화이바이오메드는 국내 콘택트렌즈 제조사인 인터로조와 공동으로 이미 토끼 100여 마리를 대상으로 동물실험을 마쳤으며, 내년에 인체 대상 탐색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렌즈는 인터로조와 협업해 대량 생산한다. 렌즈 제작 기술은 인터로조가, 전자 센서와 바이오 기술은 화이바이오메드가 맡는다.

한 대표는 “내년에 임상시험에 들어가면 2~3년 내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구글도 스마트 렌즈를 개발하고 있지만, 기술 측면에서 화이바이오메드가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먼저 허가를 받은 뒤 미국 시장에도 진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화이바이오메드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기술을 당뇨병, 당뇨병성 망막병증 등 질환의 진단·치료 플랫폼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당뇨병성 망막병증은 고혈당 상태가 지속되면서 혈관이 손상되는 당뇨합병증으로, 실명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눈물 속 당 수치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혈당을 관리하고, 합병증을 조기에 진단하는 기술도 함께 상용화할 계획이다.

한 대표는 “지난해는 스마트 안경의 원년이라고 할 정도로 구글 글래스에 이어 메타 등 글로벌 기업들이 새로운 스마트 안경을 내놓았다”며 “스마트 안경이 대중화되면 스마트 콘택트렌즈 시장 역시 성장할 거라고 본다”고 전망했다.

한세광 화이바이오메드 대표는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상용화하는 데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의 도움이 컸다고 강조했다./포스텍

◇“스마트 콘택트렌즈 상용화, 정부 지원이 큰 도움”

한 대표는 대학에서 개발한 연구 성과를 실용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범부처 전주기 의료기기 연구개발사업단(범부처사업단)의 지원 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화이바이오메드의 녹내장 진단과 치료를 위한 스마트 콘택트렌즈는 올해 범부처사업단의 10대 대표 과제로도 선정됐다.

그는 “범부처사업단에서 비임상시험을 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했다”며 “스마트 콘택트렌즈가 기존에 없던 제품이다 보니 허가를 위한 가이드라인이 없는데, 범부처사업단이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평가 기관, 화이바이오메드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며 가이드라인 마련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한 대표는 첨단 기술은 논문이나 특허로 끝나지 않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개발된 기술이 실제 사업화 되려면 아직 대량 생산 체계와 자금 조달 같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크다”며 “대학 기술들이 원활하게 사업화될 수 있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