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면 금방 집밥이 그리워진다. 하물며 지구를 떠나 수개월, 수년씩 걸리는 우주여행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안 그래도 우주에 가면 입맛을 잃기 쉬운데 지구에서 가져온 밥도 모두 동결 건조 식품이라 금방 질린다. 과학자들이 우주인의 입맛을 살릴 방법을 찾고 있다. 지구에서 가져가기 힘들다면 우주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방식이다.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달에서 다양한 식물을 재배하는 데 성공한 데 이어 고기도 키워 먹을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배양육을 우주에서 구현하는 실험이 시작됐다. 된장 같은 발효 식품도 우주에서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심우주(深宇宙) 탐사에 나선 우주인들도 밥심을 얻을 길이 열리고 있다.
◇고가(高價)의 우주 식품 대체할 세포배양육
지난 21일 오후 8시 48분(현지 시각)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널 우주군기지에서 스페이스X의 팰컨9 로켓이 발사됐다. 로켓에는 영국 프런티어 스페이스(Frontier Space)사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ICL)연구진과 같이 개발한 우주배양실험실 ‘스페이스랩 마크1(SpaceLab Mark 1)’이 실렸다. 이날 우리 군의 정찰위성 4호기도 같은 로켓을 타고 우주로 갔다.
스페이스랩 마크1은 우주에서도 세포배양 방식으로 식품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는 실험장치다. 이날 독일 아트모스 스페이스 카고(ATMOS Space Cargo)사가 만든 유럽 최초의 재사용 우주선 피닉스(Phoenix) 1호에 탑재돼 우주로 갔다가 2시간 뒤 지구로 귀환했다.
영국 연구진은 유럽우주국(ESA)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앞으로 유전자를 바꾼 미생물을 발효시켜 우주에서 단백질이나 지방, 탄수화물, 식이섬유 등 식품 원료를 만들고 원하는 모양과 맛을 내도록 가공하겠다는 계획이다. 프런티어는 2년 내 우주정거장에 소규모 배양 식품 생산시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세포배양 방식으로 식품을 만드는 것은 이미 세포배양육(cell cultured meat)으로 상용화됐다. 배양육은 소나 닭, 또는 생선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하고 근육세포로 분화시켜 만든다. 배양기에서 세포 수를 늘리고 3D(입체) 프린터로 층층이 쌓으면 고기 형태가 된다. 세포배양 닭고기는 이미 미국과 싱가포르에서 판매 중이며, 스테이크용 배양육도 영국과 이스라엘에서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배양육은 온실가스 배출 없이 인구 증가에 대비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가축은 전 세계에서 나오는 온실가스의 15%를 배출한다. 소가 방귀와 트림으로 내뿜는 메탄은 발생량이 이산화탄소보다 적지만 온난화 효과는 배출 후 25년 동안 80배 이상이다. 또 가축용 사료를 키우려고 삼림을 농지로 바꾸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관개 용수 때문에 수자원이 고갈된다.
우주에서 배양육을 만드는 것은 지구와 달리 비용 때문이다. 프런티어 스페이스에 따르면 현재 우주정거장 우주인의 하루 식비는 2만파운드(약 3800만원)에 이른다. 식품 가격보다 배달비가 문제다. 과거 로켓 운송비는 ㎏당 수천만이었다. 지금은 재사용 로켓인 팰컨9이 등장하면서 수백만원으로 줄었지만 여전히 큰 부담이다.
미국은 1972년 아폴로 17호 이래 중단됐던 유인(有人) 달 탐사를 아르테미스(Artemis) 프로그램으로 재개했다. 과거와 달리 우주인이 달에 잠시 머물다 오는 것이 아니라 우주기지를 세워 장기 체류시킬 계획이다. 스페이스X 설립자인 일론 머스크는 그보다 먼 화성에 인류를 이주시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프런티어 스페이스는 “우주정거장보다 훨씬 먼 달이나 화성에 수십, 수백명이 먹을 식품을 로켓으로 배달하는 것은 비용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그보다 우주에서 식품을 생산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현재 우주에서 먹는 동결건조 식품은 보관 기간이 2년에 그친다.
◇화성産 감자 튀김과 케첩 나올 수도
우주기지 자립을 위해 화성과 달에서 작물을 키우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마션(The Martian)’을 보면 사고로 화성에 홀로 남은 우주인이 기지에서 자신의 배설물을 비료 삼아 감자를 재배한다. 영화의 상상력은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은 지난 2016년부터 국제감자센터 페루 지부에서 화성 감자를 재배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극한 환경에 잘 견디도록 유전자를 변형한 종들이었다. 흙도 화성과 비슷한 페루 사막의 것을 이용했다. 2021년 미국 식품회사 크래프트 하인즈는 화성 토양과 흡사한 조건에서 재배한 토마토로 ‘마즈 에디션(Marz Edition)’ 케첩을 만들었다. 화성에서 감자튀김을 만들어 케첩에 찍어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나사는 2015년 우주정거장에서 로메인 상추를 발광다이오드(LED) 빛으로 수경재배하는 데 성공했다. 우주 비행사들이 상추를 시식하기도 했다. 배추와 케일, 무도 키웠다. 2021년에는 우주정거장 우주인들이 직접 키운 고추로 타코 요리를 해서 즐겼다.
중국은 달에서 식물 재배에 성공했다. 충칭대 연구진은 2019년 1월 달 뒤편에 착륙한 창어(嫦娥) 4호에 식물 생육 장치를 실어 보냈다. 여기서 목화씨와 유채, 감자가 싹을 틔웠다. 충칭대 연구진은 “인류가 최초로 달 표면에서 진행한 생물 성장 실험”이라고 했다.
달 재배용 미생물 비료도 연구되고 있다. 중국농업대의 쑨전차이(Sun Zhencai) 교수 연구진은 2023년 ‘커뮤니케이션 바이올로지’에 “달 토양에 특정 박테리아를 추가하면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된장도 우주에서 발효 성공, 더 맵고 고소
우주에서 만든 식품은 우주인의 입맛도 되찾아줄 수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덴마크 공대 연구진은 우주정거장에서 일본식 된장인 미소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지난 18일 국제 학술지 ‘아이 사이언스’(iScience)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2020년 3월 된장 원료를 3개의 작은 용기에 넣어 각각 우주정거장, MIT와 덴마크 공대에서 30일간 발효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미소 된장은 우리나라 된장처럼 콩을 발효시켜 만들어 감칠맛이 풍부한 식품이다. 다만 우리 된장과 달리 발효 과정에 곡물 누룩도 같이 넣는다.
우주 된장은 지구처럼 정상 발효된 것으로 확인됐다. 차이가 있다면 매운맛과 감칠맛이 더 강했고, 견과류와 볶은 향도 진했다. 연구진은 이런 특징은 우주 미소 된장의 발효 과정이 지구보다 더 빨리 진행되었음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우주에선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다. 중력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 우주 공간에서는 허리 아래쪽에 몰려 있던 혈액과 세포액이 위로 올라온다. 이로 인해 코와 목이 부으면서 향과 맛을 느끼는 신경이 무뎌진다. 평형감각이 사라지면서 생기는 우주 멀미도 식욕을 떨어뜨린다. 우주인들은 된장 같은 발효 식품으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연구진은 우주의 미세 중력과 방사선이 미생물의 성장과 대사에 영향을 끼쳐 맛의 차이를 가져왔다고 추정했다. 연구진은 우주 발효 연구를 이어나가 치즈, 빵 등 다양한 발효 식품을 우주에서 만드는 실험을 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참고 자료
ICL(2025), https://www.imperial.ac.uk/news/263213/first-microbes-blast-testing-production-food/
iScience(2025), DOI: https://doi.org/10.1016/j.isci.2025.112189
Communications Biology(2023), DOI: https://doi.org/10.1038/s42003-023-05391-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