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대출규제 시행으로 조합원들과 실수요자 모두 자금부담이 커지면서 정비사업 수주 경쟁에서 건설사들이 금융 혜택을 앞세우는 분위기다. 건설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중견·중소건설사의 정비사업 진입장벽을 높여 대형건설사와 수주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건설사들이 과거 수주경쟁에서 특화 설계, 하이엔드 브랜드, 조경, 커뮤니티 등을 강조하는 차별화 전략을 세웠다면 최근에는 금융 혜택을 강조하고 있다. 자사 신용도를 활용하거나 금융사와의 협약을 통해 저금리 대출, 중도금 무이자, 이주비 대출 확대 등을 내세워 수주전에 나서고 있다.
현재 경쟁이 진행 중인 서울 강남구 개포우성7차에서는 삼성물산이 국내 건설사 중 유일한 AA+ 신용등급과 안정적 자금력을 통해 다양한 금융 혜택을 약속했다. 사업비 전체를 한도 없는 최저금리 책임 조달하는 것을 포함해 조합원 분양계약 완료 후 30일 내 환급금 100% 지급, 분담금 상환 최대 4년 유예 등 조합원들을 위한 금융 혜택을 제안했다. 이주비와 임차보증금 반환비 등 사업촉진비 전액도 포함된다.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은 대우건설(A등급)은 필수사업비 조달 금리를 ‘CD+0.0%’로 제시했다. 이주비(LTV 100%)를 포함한 사업비 전액을 책임 조달하고, 사업추진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1조원 규모 사업 촉진비도 보장하겠다고 제안했다.
앞서 삼성물산은 용산구 한남4 재개발 사업에서 조합원 기본 이주비 LTV 50%에 100%를 추가한 LTV 150%(12억원)의 파격 조건으로 수주에 성공하기도 했다.
용산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사업도 HDC현대산업개발이 기본 이주비 LTV 50%와 추가 이주비 LTV 100%, 최저 이주비 20억원의 조건을 제안해 수주에 성공했다.
건설사들은 단지 특화 설계, 커뮤니티 시설 등보다 금융 혜택 제안을 위한 연구에 나섰다. 이주비 대출은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이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는 기간에 필요한 주택으로 이주하기 위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받는 대출이다.
일반적으로 조합원들은 전세로 거주할 주택을 찾거나 기존 주택의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는 데 이주비 대출을 활용한다. 기존 주택에 거주하던 세입자의 보증금을 돌려주기 위해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이주비 대출을 1주택자 기준 6억원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면서 정비 사업장은 혼란을 겪고 있다. 다주택자의 경우 실행할 수 있는 이주비 대출은 0원이다. 이 같은 이주비 제한에 부족분을 건설사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건설사의 금융 비용 부담이 커졌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금융 혜택 제공을 위해 더 전략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며 “금융사와 협력 등을 더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고, 건설사들 대부분이 금융지원 부분 강화에 나서는 실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이전에도 금융혜택 등으로 출혈경쟁이 있었지만 특화설계, 커뮤니티, 브랜드 등을 조합원들에게 강조를 많이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금융혜택에 대한 조합원들 관심도가 더 높아졌다”며 “금융 지원을 강조하는 추세가 대출규제 이후로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시공사 재무 여력에 따라 제안할 수 있는 조건의 격차가 벌어져 정비사업 수주에 있어 대형건설사와 중견·중소건설사의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무리한 추가 이주비 제시로 출혈경쟁 양상이 이어지고 있다”며 “특히 서울권 정비사업은 이미 대형건설사 위주로 수주가 집중되고 있는데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건설사들은 설 자리가 더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