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출 제한을 통한 강력한 수요 억제 정책을 발표하면서 서울 등 수도권 부동산 시장은 조정 국면에 들어갈 전망이다. 특히 대출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고 수도권 지역 내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면서 ‘한강 벨트’를 중심으로 ‘패닉 바잉’ 현상은 진정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시장에서는 “예상보다 강력한 대책이 나왔다”며 “수도권 전체가 규제지역으로 묶인 것”이라며 혼란스러운 반응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등 부동산 관계기관은 27일 ‘긴급 가계부채 점검회의’를 개최하고 수도권의 가계부채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다주택자 구입목적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제한 ▲수도권·규제지역 주담대 만기 30년 이내 축소 ▲주택구입목적 주담대 여신한도 6억원 제한 ▲수도권·규제지역 내 주담대 실행 시 6개월 이내 전입 의무 부과 등이다. 규제지역은 투기·투기과열지역, 조정대상 지역으로, 현재 강남·서초·송파·용산구만 지정돼 있다.
◇‘한강벨트’ 과열 양상은 진정될 듯…지방 영향 없어
이번 가계부채 관리 방안에 따라 과열 양상을 보이던 서울 등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등 ‘한강 벨트’의 과열 양상이 진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담대 최대 한도가 6억원으로 제한되면서 현금을 가진 이들만 한강 벨트 진입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그간 똘똘한 한 채로 갈아타기 수요가 강했으나, 이 부분이 다소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전문위원은 “전반적으로 과열양상이었던 강남권 등 서울 아파트시장은 고강도 대출 규제로 조정 국면 진입이 예상된다”며 “집을 살 때 대출을 많이 내는 고가주택일수록 대출의 민감도가 높다”고 했다. 이어 박 위원은 “일반적으로 강남 아파트는 현금 부자들만 산다는 것은 큰 오해로 대출을 많이 동원한다”며 “똘똘한 한 채, 상급지 갈아타기 수요가 몰리며 가격이 급등한 강남권과 한강변 아파트일수록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한강변 같은 경우 최근 아파트 호당 평균가를 감안하면 대출 최대 한도 6억원을 제외하면 9억~10억원의 자비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게 된다”며 “ 부동산 ‘포모(FOMO·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공포)' 현상에 따른 가격 상승세가 진정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한 서울 외곽이나 경기권은 한강 벨트에 비해서는 영향을 받는 강도가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위원은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은 서울 핵심 지역보다는 덜 영향을 받을 것 같다”면서도 “‘의무 입주 6개월’ 규제로 반사이익은 크게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강남3구·마용성이 조정국면으로 들어가면서 일부 지역에서 풍선효과가 생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함 랩장은 “아파트 거래금액이 호당 5억원에서 8억원 정도인 중저가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풍선효과가 생길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방의 경우 이번 대출 규제의 예외가 적용되면서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금부자만 집 살 수 있어”…‘사다리 걷어차기’ 비판도
시장에서는 이번 규제가 발표되자 규제 지역을 추가로 지정하지 않더라도 “수도권 전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인 것이나 다름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대출 한도를 담보 가치나 상환능력과는 관계 없이 금액으로 제한하는 것은 처음 본다”며 “강력한 규제로 당분간은 거래가 없어질 것”이라고 했다.
이번 조치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다주택자에 초점을 맞춘 규제가 다수 나오긴 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의 트렌드가 1주택자의 상급지 갈아타기였던 만큼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 있다는 비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올해 상급지 갈아타기, 1주택자의 똘똘한 한 채 구입이 경향이었던 만큼 이번 규제가 일종의 사다리 걷어차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입주장도 혼선을 빚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수도권·규제지역 내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갭투자 목적의 대출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은 주택 매수자(또는 수분양자)가 전세보증금으로 매매대금 또는 분양잔금을 납입할 때 활용되는 전세대출이다.
또 다른 부동산 전문가는 “입주잔금 치뤄야 하는 지역들도 소유권 이전 조건부 전세대출이 금지되면서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임대료를 낮추거나 돈이 있는 임차인을 만나야 세를 놓을 수 있는 분위기라서 입주장 혼선이 예상된다”고 했다.
◇정부, 집값 안 잡히면 추가 규제 검토
정부는 집값이 진정되지 않으면 추가 규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서울 강남3구와 용산구에만 묶여 있는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을 집값 급등 지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 최근 아파트값이 크게 오른 마포·성동구를 비롯해 강동구와 동작구, 광진구, 영등포구, 양천구 등 비강남 ‘한강 벨트’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일 가능성이 있다. 서울 외 과천·분당신도시 등을 규제지역으로 묶일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주택시장 움직임을 높은 경계감을 갖고 예의주시하면서 시장 안정을 위해 활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할 계획”이라며 “필요 시 규제지역 추가 지정 등 시장 안정조치도 배제하지 않고 적극 강구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