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추진했던 임장비 신설이 무산됐다. 임장은 부동산 매매를 위해 관심 지역과 매물(집과 건물 등)을 살펴보는 행위다.
최근 부동산 동호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실제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임장하러 다니는 일명 ‘임장 크루’가 확산되면서 논란이 됐다. 이 때문에 지난달 공인중개사협회는 임장 기본 보수제 도입을 올해 협회의 핵심 과제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임장비 도입을 위해서는 공인중개사법 시행령을 바꿔야 하는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이를 받아들일 계획이 없는 상태다.
28일 국토교통부와 부동산중개업계에 따르면 공인중개사협회는 지난 4월 23일 김종호 협회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임장 기본 보수제’와 관련 국토부에 도입 요청을 하지 않은 상태다. 앞서 김 협회장은 “(임장비를 먼저 받고) 공인중개사 상담을 통해 계약이 성사되면 중개 보수에서 임장비를 차감해 주는 제도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소비자가 중개사무소를 통해 매물을 둘러보면 일정 금액의 임장 비용을 사전에 지불하고, 추후 실제 계약이 체결되면 해당 비용을 중개 보수에서 차감해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장비 도입 추진을 밝힌 지 1개월이 지났지만, 도입 방안에 대한 정부와의 협의는 이뤄지지 못했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임장비를 공인중개사들이 금전 수취의 목적으로 받으려고 한다는 부정적 의견이 있고, 지금도 중개 보수에 대한 불만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임장비를 국민 정서상 수용하기 어렵다는 의견들도 있다”며 “국토부에 정식 건의하는 것은 조금 더 내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토부도 임장비 도입이 어렵다는 방침이다. 김동준 국토부 부동산개발산업과 과장은 “임장비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고 도입을 고려하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임장비 논란이 불거진 것은 외국에 비해 낮은 중개수수료 체계와 2030세대를 중심으로 한 임장 문화 확산 때문이다. 부동산중개업법 시행령에는 중개수수료의 거래 유형과 거래 금액에 따라 법정 상한선을 정했다.
매매 및 교환의 경우 거래 금액의 0.4~0.7%, 임대차의 경우 0.3~0.5%를 받을 수 있다. 미국(3~6%), 일본(3%) 등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또 부동산 투자 열풍이 불면서 매수, 매도, 임차 등 거래 의사가 없이 정보를 얻거나 경험을 쌓기 위해 공인중개사무소에 방문해 매물을 살펴보는 부동산 임장 모임이 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임장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임장을 함께 할 사람들을 비용을 받고 모집하는 상품도 판매되고 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다수가 거부감을 느끼는 임장비를 정부가 협회의 입장을 반영해 도입하기 어렵고, 임장비를 받는 중개업소와 받지 않는 중개업소가 경쟁했을 때 임장비를 받지 않는 곳으로 사람들이 몰릴 수 있어 현실적으로도 도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다만, 계약 1건을 하기 위해 많게는 30번 이상 집을 보여줘야 하는 공인중개사들의 애로사항을 이해하고 다른 나라들처럼 서비스업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확산할 필요는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