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미분양’이 발생한 대구광역시의 한 아파트에서 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CR리츠)를 통한 미분양 해소 방식을 둘러싸고 사업자와 수분양자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사업자는 아파트의 분양률이 절반에 미치지 못하자 CR리츠를 통해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털어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분양자들은 ‘마이너스 피’까지 붙은 매물이 쏟아지는 상황에 CR리츠로 인해 아파트 가치가 더 내려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22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구 중구에 위치한 ‘힐스테이트 대구역 퍼스트 1·2차’ 시공사인 현대건설과 시행사인 이담씨엔씨(1차)·이담알엔디(2차)는 악성 미분양을 해결하기 위해 CR리츠에 미분양 주택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시행사는 지난달 “시행사, 시공사, 수분양자 모두의 재산권 보호를 위해 CR리츠 등 정부 정책 하에 미분양 해소 방안 및 단지 활성화를 위한 입주 촉진 방안을 추진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입주 예정자들에게 보냈다.
CR리츠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여 임대로 운영하다가 부동산 경기가 회복되면 매각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국토교통부는 작년 3월 미분양 주택 문제가 심화되자 2014년 이후 10년 만에 CR리츠 제도를 되살렸다.
힐스테이트 대구역 퍼스트 1·2차는 각각 지하 5층~지상 41층의 2개 동(216가구)과 지하 5층~지상 37층의 2개 동(174가구) 규모로 공급되는 단지다. 2021년 분양을 마친 이 아파트는 당초 이달 준공·입주 예정이었다. 현대건설은 입주 시기를 두 달여 앞당겨 지난 3월 말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입주 지정 기간은 다음 달 15일까지다. 준공이 완료된 이 아파트의 분양률은 50%를 넘지 못했다.
미분양 물량을 해소하기 위해 사업자가 CR리츠 매각을 검토하자 입주 예정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분양 물량이 CR리츠로 담길 경우 기존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이 적용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존 분양자들은 똑같은 아파트를 비싸게 들어가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사업자는 CR리츠에 미분양 물량을 매각할 경우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넘길 수밖에 없다. CR리츠는 사들인 미분양 주택을 임대한 뒤 향후 주택 가격이 올라올 때 이를 되팔아 수익을 내기 때문에 최대한 싼 가격에 미분양 주택을 사들이려고 한다. 이 아파트의 분양가는 5억~6억원대다.
또 수분양자들은 CR리츠로 임대 세대가 늘어날 경우 아파트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도 CR리츠에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해당 아파트의 한 입주 예정자는 “최근 사업자는 분양가 이상으로 리츠 매각을 검토하겠다는 공문을 일방적으로 발송했다”며 반대하거나 민원을 제기할 경우 미분양 물량이 공매로 넘어갈 수 있다는 의견을 전달 받았다고 했다.
사업자들은 입주자 달래기에 나선 상황이다. 시행사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중도금 이자후불제 자체는 변동이 없다”라면서도 중도금 대출이자 1% 지원금과 가구당 입주 축하금 200만원 등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시행사에서 분양가 이상으로 CR리츠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공문을 보낸 것은 맞다”면서도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 공매를 진행하겠다고 답변했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대구 지역에 미분양 아파트가 워낙 많다 보니 타사에서 공매를 진행하는 사례가 있어서 해당 단지도 공매로 넘어가면 가치가 떨어지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것 같다”며 “이 단지가 미분양되면서 공사비 회수도 못하고 있는데 공매로 넘길 이유가 전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