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국회가 모듈러(modular) 건축공법으로 건축되는 모듈러 주택에 대한 규제 완화에 나서고 있다. 모듈러 공법은 벽체·창호·배관·욕실 등 표준화된 모듈을 공장에서 미리 제작해 현장으로 운반해 조립한 후 건축물을 완공하는 스마트 건설 기법이다. 공사 기간 단축, 건축물 폐기물 감소, 탄소 배출 저감이 가능한 친환경 공법이다. 그러나 기존 공법보다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단점도 있다.

정부와 국회는 모듈러 주택에 대해 기존 공법으로 만들어진 주택보다 건폐율과 용적률을 15% 이상 상향해주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 중이다. 삼성물산, GS건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주요 건설사와 공기업도 이 공법을 적극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모듈러 공법이 더욱 널리 활용되면 현장에서 직접 콘크리트를 타설해 건축물을 짓는 지금까지 건설현장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GS건설이 충북 음성에 모듈러 공법으로 만든 ‘공동주택 시험 건축물’ 내부(아래쪽)와 외부 경관 / 자료 = GS건설

국회, 용적율·건폐율 완화 담은 법 개정안 협의

6일 국회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모듈러 공법으로 짓는 주택에 대한 3건의 법률(주택법) 일부 개정안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 1월 발의된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명의 개정안과 지난해 7월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 등 12명이 발의한 개정안, 지난해 9월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5명이 발의한 개정안이 소위원회 심사를 받고 있다.

한정애 의원 등이 발의한 법안에는 모듈러 공법으로 지은 주택의 현재 법적 용어인 ‘공업화 주택’을 ‘조립식 건축주택’으로 바꾸는 내용이 포함됐다. 모듈러 공법으로 지은 주택은 현재 법적 용어인 공업화 주택 또는 모듈러 주택으로 혼용해서 불리고 있다. 특히 법적 용어인 공업화 주택은 모듈러 공법의 특징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는 용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한 의원 등은 이를 ‘조립식 건축주택’으로 바꾸자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법안에는 모듈러 주택으로 지을 수 있는 주택의 대상을 준주택인 숙박시설과 오피스텔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담았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 외의 준주거 건물도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법안에는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건축면적)과 용적률(대지면적 대비 연면적 비율) 규제 완화도 포함됐다. 모듈러 주택에 대해서는 일반 건축물에 적용되는 건폐·용적률에 추가로 15%를 더해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하자는 내용이다. 서범수 의원 등이 제출한 개정안과 허영 의원 등이 제출한 개정안에도 모듈러 주택에 대한 건폐·용적률 규제 완화가 담겼다. 모두 이 비율을 기존 주택보다 15%씩 늘리자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용적률이 400%까지 적용받을 수 있는 용지 3만3000㎡(1만평)에는 기존 건물을 연면적 13만2000㎡(400% 적용)까지 지을 수 있지만 모듈러 주택으로 지으면 15%의 면적을 추가해 연면적 15만1800㎡까지 건물을 허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회 관계자는 “모듈러 주택은 기준 주택보다 공사 기간을 최대 50% 단축할 수 있고 건설 폐기물이 적게 나오는 장점이 있다”며 “현장 작업 인원도 적어 안전사고 예방 효과도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기존에 현장에서 철근 콘크리트를 타설하는 방식보다 30% 정도 공사비가 비싼 것이 단점인데 이를 보완하고 건설사들의 사업성을 보존해주기 위해 용적률과 건폐율에 대한 혜택을 주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 정부와 의원들의 의도”라고 설명했다.

조봉호 아주대 건축학과 교수는 “모듈러 주택은 건설 현장보다 훨씬 품질이나 환경을 제어하기 쉬운 환경의 공장에서 미리 모듈(주택 부품)을 만들어 현장으로 옮긴 후 조립만 하는 주택이고 지금은 로봇이나 사물 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을 이용해 더욱 쉽게 모듈러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공장을 만들기 쉽다”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다만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 초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해야 하기에 정부와 국회 차원에서 지원이 필요한 사업”이라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국가에서는 다양한 모듈 크기의 모듈러 주택을 도입하고 있어 국내 건설업계도 이런 관심과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 딘스트리트에 있는 461 Dean Apartments. 2016년 준공된 이 건물은 모듈러 공법으로 지어졌다.

건설사들, 현장 중심 패러다임을 모듈러 중심으로 바꿔

한편 국내 건설사들도 모듈러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2023년 1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고 공동출자를 통해 사우디 내에 모듈러 제작시설을 짓기로 합의했다. 사우디는 네옴시티 프로젝트의 일부인 ‘더 라인’을 건설하는 데 모듈러 공법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더 라인’은 사우디 북서부 타부크주에 총 170㎞에 달하는 거울형 직선 도시를 만드는 프로젝트다.

GS건설도 모듈러 공법을 확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2020년 모듈러 공법의 일종인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Precast Concrete) 제조 자회사 ‘GPC’와 목조 모듈러 전문 자회사 ‘자이가이스트(XiGEIST)’를 설립했다. PC는 모듈러 공장에서 콘크리트 기둥, 보, 슬래브 등의 부재를 만들고 이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으로 ‘조립식 콘크리트’ 공법으로도 불린다. 지난달 28일에는 충북 음성 GPC 공장 안에 PC 공법으로 만든 공동주택 시험 건축물을 완공하기도 했다. GS건설은 이 건축물을 30층 이상 높이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현대엔지니어링도 2023년 6월 경기 용인시 영덕동에 13층짜리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을 모듈러 공법으로 완성했다.

모듈러 주택 관련 안내 영상. / 자료 = 자이가이스트(XiGEIST) 제공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민간참여 공공주택 건설사업에도 모듈러 공법을 활용하고 있다. 극동건설 컨소시엄과 함께 지난해 12월 착공한 ‘의왕초평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 공급촉진지구’ 내 A-4BL에 381가구의 모듈러 주택을 짓는 사업을 하고 있다. 이 사업으로 공급되는 모듈러 주택은 최고 22층으로 조성되는데 국내 모듈러 주택 중 최고층으로 지어진다.

건설사 관계자는 “모듈러 공법은 건축 품질을 균일하게 관리하기 쉽고 안전사고도 예방할 수 있어 많은 건설사가 앞다퉈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헌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모듈러 주택은 그동안 현장 중심이었던 건설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아직 공사비가 비싸고 기술이 덜 개발됐지만 앞으로 많은 투자를 통해 대량의 모듈러 제품을 만들고 규모의 경제가 생기면 비용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