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재건축‧재개발 시장에서 삼성물산 ‘래미안’의 돌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삼성물산은 1분기(1~3월) 만에 올해 전체 정비사업 수주목표액의 70%를 달성했다. 지난해 연간 전체 수주액과 비슷한 규모의 수주를 3개월 동안 이뤄낸 것이다. 수주액 기준 2위인 GS건설과도 1조원 넘게 많은 수준이다.
재건축‧재개발 조합 사이에선 삼성물산의 래미안 브랜드를 붙이기 위한 각축전이 이뤄지고 있고 삼성물산이 시공사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 조합 집행부가 무능하다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업계에선 정비시장에서 삼성물산이 다수의 노른자위를 수주하는 독주가 한동안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강력한 브랜드파워를 기반으로 한 신뢰가 쌓여 다른 건설사들이 삼성의 아성을 깨뜨리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① 3개월 만에 지난해 전체 수주 다 했다…삼성 유치 못 한 조합은 혼란 빠져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삼성물산은 총 5건의 정비사업을 수주해 3조5560억원의 수주액을 달성했다. 삼성물산이 연초에 제시한 올해 수주목표 5조원의 약 71%를 1분기에 이뤄낸 것이다. 지난해 연간 전체 정비사업 수주액(3조6398억원)과 견줘도 800억원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2위 GS건설(4건‧2조1949억원)과는 1조원 넘게 차이가 나고 시공능력 평가 2위인 현대건설(2건‧1조780억원)의 수주액과는 2조원이 넘는 격차가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재건축이나 재개발 조합원들이 시공사 선정 투표를 할 때 거의 모든 조합의 30% 정도는 삼성물산 래미안의 고정표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삼성물산을 유치하지 못한 조합 집행부는 혼란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6·7단지 아파트 재건축정비사업조합은 지난달 시공사 선정 입찰을 진행했지만, 삼성물산이 불참하면서 유찰됐고 조합장은 조합원들에게 삼성물산을 비난하는 단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가 삼성물산에 “정정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
② 품질 기반 브랜드파워에 설계 기준도 선도
삼성물산의 인기는 2000년 도입돼 26년째 단일 브랜드로 유지되고 있는 래미안(來美安‧RAEMIAN)의 브랜드 파워가 시장에 신뢰를 구축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래미안은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 아파트 부문에서 지난해 1위를 기록했다. 이 브랜드가 도입된 이후 매년 조사했지만,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분양업계 관계자는 “다른 건설사가 하이엔드급 브랜드와 일반 브랜드를 나누는 전략을 사용하지만, 삼성은 20년 넘도록 단일 브랜드 전략을 펴고 있는데 이건 삼성이 지은 모든 아파트를 차별하지 않고 하이엔드급으로 짓겠다는 의미라 조합원들이나 일반 분양자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했다. 하이엔드급 브랜드로 선택된 아파트 주민들은 좋지만, 그보다 급이 낮은 일반 브랜드를 붙인 단지의 주민들은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구분 짓기를 하지 않는 것이 삼성물산의 인기 원인 중 하나라는 의미다.
현대건설과 현대엔지니어링은 일반 브랜드인 힐스테이트와 하이엔드급인 디에이치를 나눴고, DL이앤씨와 DL건설도 일반 브랜드인 e편한세상과 하이엔드급인 아크로를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또 계열사 간 브랜드 사용 계약을 맺으며 하나의 브랜드를 다른 건설사가 짓는 경우도 많다. DL건설이 지은 e편한세상과 DL이앤씨가 지은 e편한세상이 있는 셈이다.
삼성물산은 주도적인 연구로 아파트 설계의 기준 지침을 바꾸기도 했다. 삼성물산은 폭우가 쏟아지는 장마 기간에 지하수를 효과적으로 배수할 방법을 고민해 지하층 상부 전면에 자갈 배수층을 최초로 적용했다. 지하층 상부에 바로 토사를 쌓거나 일부 구간에만 배수관을 설치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배수 성능이 저하되는 단점이 있어 이를 보완을 위한 조치였다. 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토목 설계지침 개정안에 반영돼 2020년부터 ‘공동주택단지 인공지반 배수처리’에 대한 국가설계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③ 손해 봐도 공사, 소송 위험 적고 대부분 대장 아파트
삼성물산은 손해를 보더라도 일단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6월 입주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공사로 삼성물산은 300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합은 99억원을 추가로 주는 방안을 의결했지만, 일부 조합원이 반대하는 상황이다. 다만, 공사가 기한 안에 끝나면서 일반분양 등의 일정과 입주가 마무리됐다. 지난해 7월 일반 분양가는 3.3㎡당 6736만9050원으로, 분양가 상한제 단지 내 역대 최고 분양가를 기록했다. GS건설은 신반포4지구 등과, 현대건설은 반포주공아파트1단지1·2·4주구, 대조1구역 등과 장기간 공사비 갈등을 겪었고 입주를 몇 개월 앞두고 공사를 중단하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래미안 브랜드와 국내 최대 삼성그룹의 신뢰를 기반으로 사업을 해서 공사비를 조금 더 받겠다고 입주를 볼모로 소송을 거는 행동은 하지 못한다”면서 “다만 처음부터 가장 좋은 입지의 가장 좋은 사업성을 가진 곳을 수주해 그 지역의 대장 아파트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한때 반포동의 아크로리버파크가 그 지역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래미안 원베일리가 이를 넘어선 것은 이런 시장의 신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