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6.3%. 하지만 건설·부동산 업계의 여성 임원은 1.0% 수준에 불과하다. 시공능력 10대 건설사 중에서도 여성 임원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어도 아직은 1~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는 그만큼 남성 중심적 문화가 지배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는 업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아직 손꼽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여성 임원과 대표가 곳곳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이들을 만나봤다. 그들이 생각하는 일은 무엇이고 어떻게 일을 하고 있을까.

“건설업은 시공 현장 이미지가 강하지만 생각보다 연관된 산업이 많은 분야입니다. UAM(도심항공교통)이나 신재생·친환경 분야는 물론, 바이오헬스, 프롭테크, 메타버스 등 다양한 업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개척할 수 있는 영역이 많다는 점이 건설업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일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대우건설 본사에서 만난 안신영 신사업개발팀장(상무)은 건설업의 매력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1997년 한국장기신용은행에 입사한 후 CJ제일제당(2003~2007년)을 거쳐 2008년 대우건설에 입사한 재무전문가인 안 상무는 대우건설이 배출한 첫 여성임원이다.

안신영 대우건설 신사업개발팀장(상무) 사진/대우건설 제공

안 상무는 대우건설의 대표적인 해외사업인 베트남 스타레이크(한국형 해외신도시 조성사업) 사업부지 내 상업용지 복합개발을 기획한 인물이다. 대우건설은 이 복합개발 사업에서 토지사용권 매각, 펀드 출자를 통한 사업시행과 더불어 시공까지 직접 진행하고 있다.

안 상무는 신사업개발팀을 이끌며 대우건설의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우건설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UAM 분야는 물론 신재생·친환경 분야 진출 역시 안 상무의 손을 거쳤다. 남다른 통찰력으로 대우건설의 신사업 업무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ㅡ 건설회사의 신사업팀은 어떤 일을 하나.

“처음 신사업개발팀장을 맡으며 신사업 추진 방식과 분야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신사업에 대한 전사 공감대도 거의 없던 시기라, 인력과 자금 지원 역시 부족해서 신사업을 직접 추진하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크게 시작할 수도 없던 상황이었다.

팀원들과 고민 끝에 초기 유망 스타트업에 대한 소수 지분 투자와 협업으로 신사업 진출 기반을 먼저 구축하고 투자를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렇게 방향을 설정한 후에는 팀원들과 밖으로 뛰어다니면서 안으로는 사내 유관부서를 설득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회의를 거쳤다. 심의가 통과된 이후에도 이미 투자한 업체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했다.

이 과정을 거쳐 드론업체인 아스트로엑스, 전기차 충전업체인 휴맥스 EV, 플랫폼 기반 클라우드 서비스업체인 아이티로 등 총 4개 기업을 발굴했다.

현재 각 기업과 K-UAM 사업 진출(아스트로엑스)과 모빌리티·에너지 디벨로퍼 분야(휴맥스 EV), 푸르지오 스마트홈 플랫폼 고도화(아이티로), 해상풍력 개발사업, 베트남 복합개발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신사업에 대한 내부 공감대도 점차 확산하고 있고, 중흥그룹 편입 이후 전사 차원의 지원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사업 검토 시 위험 부담이 크다고 여겨졌던 일들이라 지금의 성과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함께 참여한 팀원들의 역량이 배가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리더로서 큰 보람도 느꼈다.”

안신영 신사업개발팀장과 팀원들이 회의하는 모습./대우건설 제공

ㅡ 어떤 기준으로 신사업 투자를 결정하나.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며 산업의 변화 방향을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래 산업 트렌드에 부합하면서 높은 성장이 기대되고, 건설업과의 시너지 효과도 큰 분야를 위주로 투자하고 있다.”

ㅡ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신사업을 꼽자면.

“UAM 분야다. 정부는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로드맵’을 발표하고, 2025년 상용 서비스 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우건설 역시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 휴맥스모빌리티, 아스트로엑스와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국토교통부가 주관하는 ‘한국형 도심항공교통(K-UAM) 그랜드챌린지’ 1단계 실증사업 제안서를 지난 5월에 제출했다.

UAM 산업은 첨단기술 집약 미래 신산업이다. 건설사는 UAM의 이착륙시설인 버티포트(지상 이동수단과 공중 이동수단을 연결해주는 터미널)를 설계하고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역할을 한다. 향후 푸르지오 아파트 단지 내 버티스탑(Vertistop 1~2대 기체 수용) 건설에서 시작해 도심 곳곳에 버티포트(Vertiport, 4~8대 기체 수용)와 버티허브(VertiHub, 20대 이상 기체 수용)까지 구축하는 등 다양한 연계사업 기회를 모색할 예정이다.

소기의 성과도 있었다. 회사가 투자한 아스트로엑스는 2022년 3월 국내 최초의 수륙양용이 가능한 개인용 비행체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현재 국토부의 안전성 인증을 남겨두고 있다. 또한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한 전기 수직이착륙(eVTOL) 비행체는 사람 탑승이 가능한 인증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아스트로엑스와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가 공동 개발 중이다. K-UAM 참여를 통해 대우건설은 항공 분야 신사업 진출과 미래항공모빌리티(AAM) 산업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다.

유망 해외지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일에도 몰두하고 있다. 올해는 싱가포르에 투자전문법인을 설립한 후, 베트남 유망기업 발굴에 주력하고 있으며 전략적 파트너도 물색하고 있다. 향후에도 물류(콜드체인), 신재생, 친환경 등 다양한 ESG 관련 기업 지분 투자와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신규 사업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대우건설이 구상하는 UAM 관광 및 카고드론 활용 버티포트./대우건설 제공
대우건설의 드론박람회 참가 사진./대우건설 제공

ㅡ 어려웠던 사업이 있다면.

“베트남 스타레이크 부지 내 B3CC1 블록, H1HH1 블록 상업용지 복합개발사업 두 건이다. 당초 베트남 스타레이크 사업은 주거 용지만 자체 분양사업을 하고, 상업용지는 단순히 토지 매각 차익만 추구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그런 상황에서 상업용지를 직접 개발해보자고 제안했다. 베트남의 성장성을 감안할 때 상업용지를 개발하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의견이 받아들여져 상업용지 2개 블록의 복합개발 사업이 시작됐다.

당시 현지 파트너 없이 순수 국내 자본만으로 해외 상업용지를 직접 개발한 사례가 국내에 많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유치 과정이 쉽지 않았다. 특히 대규모 자금 조달 여부가 사업 성공의 관건이었으므로, 국내 금융기관들을 대상으로 수없이 많은 PT를 하고 베트남 현지 실사도 여러 차례 진행하는 등 사업 성공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대형 금융기관을 투자자로 유치했고,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조달 리스크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베트남의 대내외 상황 등으로 사업 추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지법인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며 인허가 작업을 일정대로 진행해오고 있다.”

베트남 복합개발사업 H1HH1 조감도/대우건설 제공
베트남 하노이 스타레이크시티 B3CC1 조감도/대우건설 제공

ㅡ 동료들이 대부분 남성인 환경이라 어렵지는 않았나.

“사실 적응하면 남자나 여자나 똑같은 환경이지만, 건설회사는 시공이 주된 사업이라 현장 중심이다 보니 여성 인력이 타업종 대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주요 보직자도 여성이 매우 적은 편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신감 있게 일하려면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나는 다행히 재무금융실이 재무금융본부로 격상되던 시기에 대우건설로 넘어오면서 상대적으로 많은 역할을 부여받았다. 이전 회사에서 쌓아온 전문성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였다.

입사해서는 상대적으로 차별화된 역량을 키워나갈 수 있는 기획업무에 시간을 많이 쏟았다. 이전 회사에서 경험했던 금융 유동화 구조와 관련된 의견을 지속해서 냈고, 잘 받아들여졌다.

이후 재무기획IR팀장을 맡았다. 건설 담당 애널리스트들 및 유관 사업팀 사람들을 수시로 만나면서 건설업 전체 현황 및 회사 내부 상황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이직 후 몇 년간은 업무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서 회사에 적응했다.”

ㅡ 앞으로의 계획은.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 하나하나 마무리하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싶다. 현재 UAM, 해상풍력, 신재생 에너지, 친환경 등 신사업들이 다 초기 단계다. 이 사업들을 키워가면서 대우건설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싶다.

그 과정에서 팀원들이 각 분야에서 전문적인 역량을 키워 신사업 분야의 리더가 되도록 이끌어 주고 싶다. 신사업 분야 인재 풀을 넓히고 궁극적으로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할 수 있다면 대우건설의 기업가치도 비약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