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넘쳐 흘렀다.

지난 8일 갑작스레 내린 폭우에 갈 곳을 찾지 못한 빗물이 모여들면서 서울의 고질적인 침수 지역인 강남역 일대를 비롯한 곳곳이 물에 잠겼다. 강남권의 경우 코엑스 지하 주차장·고속버스터미널 일부 지하상가 뿐 아니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도 물이 차오른 경우가 있었다.

방배·사당·이수·동작 등에서도 빗물이 넘치면서 일부 지하철역은 폐쇄됐다. 서울 강남 일대는 2010년 9월과 2011년 7월에도 집중호우로 물에 잠기는 피해를 봤다.

전문가들은 상습 침수의 원인으로 빗물 처리 제반 시설 부족과 물이 모이는 지형, 물이 빠지지 않는(불투수) 땅의 면적 증가 등을 꼽고 있다.

8월 8일 서울 강남역 사거리 교대방향이 도로가 침수돼 있다./뉴스1

9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강남구와 서초구 지역에는 시간당 100㎜가 넘는 비가 쏟아졌다. 강남 지역의 시간당 최대 강우 처리 용량 85㎜를 훌쩍 넘어선 수치다.

과거 홍수는 주로 강 범람, 제방 붕괴로 일어났다. 하지만 최근에는 배수시설이 폭우를 감당하지 못해 도심이 물에 잠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하천 정비와 물길을 만드는 개수정비사업이 이뤄진 후에도 침수 사태는 멈추질 않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부터 대책을 만들어 대응해왔다. 그러나 과거 기상현상을 기준으로 만들어 이번과 같은 폭우엔 역부족인데다, 그나마도 예산 등의 문제로 일부 시설은 아직 완공되지도 않았던 상황이다.

2015년 발표된 ‘강남역 일대 및 침수취약지역 종합배수 개선대책’에 따르면 서울시는 ▲잘못 설치된 하수관로를 바로잡는 배수구역 경계조정 ▲서울남부터미널 일대 빗물을 반포천 중류로 분산하는 지하 배수시설인 유역분리터널 공사 등을 추진했다. 하지만 예산과 설계 문제 등으로 인해 공사는 계속 지연됐다.

배수구역 경계조정 공사는 원래 2016년까지 마무리할 예정이었으나 예산과 지장물 이설 문제로 인해 2024년까지 연장된 상태다. 반포천 유역분리터널(교대역∼고속터미널역 총 연장 1162m)은 2018년에 착공해 올해 6월 완공됐지만, 시간당 95㎜ 강우를 방어할 능력 정도다.

기상청의 ‘장마백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 20년간 12시간 동안 150㎜ 이상 폭우가 쏟아진 빈도가 그 이전에 비해 60%나 증가하는 등 강수량에 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30년 평균으로 강우처리량을 계산해 처리량을 95㎜ 수준으로 맞췄다.

이런 와중에 관련 예산도 줄었다. 서울시의 2022년 예산서에 따르면 시는 올해 수방 및 치수 분야에 4202억원을 배정했다. 2021년 5099억원보다 약 896억원(17.6%) 줄었다. 치수 및 하천관리가 1517억원에서 1088억원으로 429억원 가량이 줄었고, 하수시설 관리가 3581억원에서 3114억원으로 감소했다.

배수 인프라 부족 문제에 더해 빗물이 고이는 지형이라는 점도 강남 일대가 상습적으로 물 난리를 겪는 이유로 꼽힌다. 강남역 일대는 주변 지역보다 10m 이상 낮은 항아리 형태의 지형이다. 또 반포는 예로부터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반포의 한잣말 중 ‘반’은 ‘소반 반(盤)’자로 물받이 ‘대야’라는 뜻이다.

그래픽=손민균

여기에 도시가 과도하게 개발 되면서 아스팔트로 뒤덮여 물이 흡수될 곳을 잃은 것도 문제다. 이른바 불투수 면적이 급증한 것이다. 서울의 불투수 면적률은 52.84%다. 1962년 불투수 면적율(7.8%)과 비교하면 8배가 됐다.

김진수 국회입법조사처 국토해양팀 입법조사관은 “우수관 설비 자체가 최근 상황을 반영하지 않은 것인지 다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도시가 얼마만큼 홍수를 감당할 수 있을 지 큰 그림에서 도시설계를 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그 밖에 공원을 만들어 물 순환율을 높일 필요가 있고, 빌딩 개발 등에 따른 불투수 면적률이 높아지는 것에 대한 부담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빗물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빗물세는 지표면으로 비가 흡수되지 않는 콘크리트, 아스팔트, 건물 지붕 등 불투수 면적에 비례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빗물세 도입을 통해 보도블럭을 투수블럭으로 바꾸는 등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우승엽 도시재난연구소 소장은 “30년 빈도 폭우에도 견딜 수 있는 빗물저류배수시설이 양천구 신월동에 있지만, 이번처럼 80년 빈도로 오는 비는 감당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50년, 100년에 한번 발생하는 폭우를 예방하는 시설들을 도시홍수가 빈번한 강남권 중심으로 더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