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델링 업계가 지난 달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의 불똥이 튈까봐 걱정하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붕괴사고의 원인을 공식적으로 밝혀내진 않았으나, 붕괴 사고가 일어난 동에서 내력벽이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만약 이 같은 분석이 공식 결론으로 도출될 경우 숙원이던 ‘내력벽 철거’ 규제 완화가 요원해질 가능성이 있어 리모델링 업계가 예의 주시하는 중이다.

수직 증축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모여 있는 경기도 성남 분당 신도시 아파트 단지 전경.

9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화정아이파크의 붕괴사고가 발생한 201동은 가구와 가구를 나누는 격벽이 콘크리트가 아닌 스터드경량벽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량벽이란 천장과 바닥 사이에 끼워넣은 얇은 벽이다. 무게를 지탱하는 역할은 하지 않고, 그동안은 주로 가구 안에서 방과 방 사이를 나눌 때 쓰였다.

경량벽을 사용한 것은 ‘무량판 방식’으로 아파트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무량판 방식은 층고를 높이고 층간 소음을 줄일 수 있지만, 보를 사용하지 않고 기둥과 슬래브만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공을 잘못할 경우 붕괴에 취약할 수 있다.

이공희 국민대 건축대학 교수는 “설계 당시 구조계산에서 경량벽을 사용했어도 안전에 문제가 없기에 그런 결정을 했을 것”이라면서도 “세대 간 경계를 반드시 구조벽(구조를 담당하는 내력벽)으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지만, 상식으로 통용되던 것이라, 경량벽을 사용한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형준 정도안전기술단 대표도 “무량판 구조를 채택해도 내력벽은 반드시 필요한데 설계도상으로 봤을 때는 모두 칸막이 벽만 이용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량판 구조는 한국 아파트 대부분이 택하고 있는 내력벽과 기둥 중심의 벽식 구조에 비해 콘크리트 양생이 충분할 때까지 동바리를 유지하는 등의 조치가 특히나 더 필요한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화정아이파크의 경우 콘크리트 양생이 충분히 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바리를 해체한 정황이 나왔다.

화정아이파크 사고로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검증된 내력벽의 중요성이 재조명되자 걱정이 커진 것은 리모델링 업계다. 문재인 정부 들어 안전진단 등 재건축 관련 규제가 강화되자 지난해부터 리모델링이 대체 시장으로서 주목을 받으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시공능력 평가 기준 10대 건설사 중 8개 건설사가 리모델링 전담 조직을 갖추기도 했다.

리모델링업계는 내력벽 철거에 대한 용역 결과를 수년째 기다리고 있다. 내력벽 철거가 가능해지면 좌우 확장을 통해 채광과 일조를 용이하게 하는 등 상품성을 높일 수 있다. 리모델링 업계 관계자는 “내력벽을 철거하지 못한 구축 아파트는 전면 발코니 기준 세로로 길어지기 쉬운데 내력벽을 철거해도 된다는 용역 결과만 나오면 2~3베이(Bay·발코니와 맞닿은 방과 거실의 수)의 아파트를 3~4베이로 바꿔 사람들이 더 선호하는 구조의 집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리모델링 업계는 최근 서울 아파트 단지 리모델링 조합과 추진위원회 70곳이 모여‘서울시 리모델링 주택조합 협의회’를 출범하고 국토교통부에 내력벽 철거 허용을 요구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화정아이파크 사고의 공식 조사 결과, 사고 원인으로 내력벽 문제가 거론될 경우 리모델링 업계와 추진 단지들은 적극적으로 내력벽 철거를 요구하기 어렵다.

리모델링 업계는 내력벽 철거가 반드시 구조적 불안정성으로 이어질 것이란 인식은 오해라는 입장이다. 이동훈 한국리모델링협회 정책법규위원장은 “꼭 무량판 구조가 아니더라도 라멘식(기둥식) 구조처럼 내력벽 비중을 줄이고 가변성 있는 벽으로 대체하는 것이 최근 추세”라면서 “결국 건축물 구조상 콘셉트의 문제이며, 이론상 둘 다 안전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리모델링에서의 내력벽 철거는 건축물의 전체 구조 차원에서 내력벽을 철거한 후 복구나 보강까지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안전성에 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리모델링 업계 관계자는 “가구 간 벽체가 다른 벽체보다 안전에 더 중요하다는 것은 편견”이라며 “벽체의 안정성은 결국 구조물 사이 힘의 균형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대중의 인식을 바꾸지 못한 상황에서 광주 사고의 배경에 내력벽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악재”라며 “한동안은 설득 작업이 어려워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건축 전문가들도 비슷한 예상을 하고 있다. 이공희 교수는 “구조벽을 철거하는 것은 큰 모험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번 광주 사고로 완화 움직임에 제약이 더 생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김형준 대표 역시 “내력벽 문제가 광주 사고의 직접 원인이 아니라도 내력벽 문제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됐다는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금 상황에서 내력벽 철거 규제를 완화할 경우 빌라 등 소규모 리모델링 사업장이나 영세업체에서는 눈가림식으로 내력벽을 철거해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정부 입장에서도 더 조심스럽게 사안에 접근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