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지역에서도 재개발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고 언급하자 도시재생사업지구라는 이유로 정비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던 장위11구역에서 일부 주민들이 재개발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추진위원회를 꾸린 상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전통시장 상인들 및 가로주택사업 조합원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시장 상인들은 재개발이 진행되는 기간에 장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을 들어 반대한다. 가로주택사업 조합원들은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반대가 거세다.

◇ 재개발 홍보 나선 주민들… “공공재개발·공공기획 병행 추진”

1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장위11구역 재개발추진위원회 주민들은 9월로 예정된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 모집과 오세훈표 재개발인 ‘공공기획’ 사업 공개를 앞두고 최근 두 사업의 장점을 설명하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아울러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을 통해 사업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을 모아 공공재개발과 공공기획의 장점을 홍보하고 있다.

성북구 장위동 일대 전경/최온정 기자

장위11구역은 과거 장위뉴타운이 추진됐다가 무산된 곳이다. 2005년 뉴타운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고 2010년에 조합설립인가까지 마쳤지만, 사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2017년 서울시 직권으로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이후 3년간 대규모 정비사업이 추진되지 않았다.

사업이 좌초되자 일부 구역에서는 소수의 주민만 찬성해도 추진할 수 있는 가로주택정비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부터는 장위11구역이 ‘장위 골목시장’과 한 데 묶여 전통시장연계형 도시재생사업 시범지구로 지정되면서 시장 활성화사업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한때 대규모 뉴타운을 꿈꿨던 이곳은 여러 구역으로 쪼개져 한쪽에서는 가로주택사업이, 다른 쪽에서는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며 정비사업과는 멀어진 듯 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지난해 정부가 사업절차를 간소화한 공공재개발을 들고 나오면서 부터다. 공공재개발은 공공이 주체가 돼 사업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용적률이 120%까지 상향되고 분양가상한제도 적용되지 않는 등 특혜도 제공된다. 특히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지역에서 호응도가 높았다.

이 사업이 공개되자 장위11구역에서도 일부 주민들이 후보지 공모에 신청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가 도시재생사업지역을 후보에서 배제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선정되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정부가 2·4대책을 통해 역세권과 저층주거지, 준공업지역 등을 재개발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공개하고, 서울시가 사업절차를 확 줄인 오세훈표 민간재개발 ‘공공기획’까지 공개하면서 재개발을 추진하려는 주민들의 열망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도시재생사업지에서도 민간 재개발을 허용하는 기조로 선회하자 장위11구역 일대도 들썩이고 있다. 재개발추진위원회의 한 주민은 “장위11구역을 한 데 묶어 재개발을 추진할 경우 대규모 단지가 들어설 수 있어 이 일대가 새롭게 탈바꿈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 상인·가로주택조합원들은 ‘반대’…주민 간 갈등 비화 우려

그러나 찬성하는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도시재생사업으로 수혜를 받고 있는 장위 골목시장의 상인들과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원들은 재개발 사업이 달갑지 않다.

장위 골목시장의 한 상인은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면서 시장 환경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었는데 사업이 중반도 채 지나기 전에 재개발 사업으로 중단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재개발이 진행될 경우 장기간 장사를 하지 못하는데 그 손해를 누가 보상해주는가”라고 했다.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쪽에서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사업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장위10구역 모습/최온정 기자

주민들 간의 갈등은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을 추진할 당시 극에 달했다. 찬성하는 쪽에서 사업을 홍보하는 플랜카드나 벽보를 부착하면 반대하는 쪽의 신고로 바로 떨어지기 일쑤였다. 이에 재개발추진위에서도 가로주택정비사업 홍보 벽보를 신고하거나, 조합에서 배부한 동의서의 일부 표현이 과장됐다고 구청에 민원을 넣는 등 반격에 나섰다. 나아가 창신·숭인동 등 도시재생사업 폐지를 요구하는 다른 지역과 연대해 주민들의 반대 동의서를 모아 서울시에 제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를 포용하지 못하면 장위11구역의 재개발 사업은 순탄치 못할 전망이다. 반대 민원에 민감한 성북구청이 주민들의 재개발 요구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2·4대책 후보지를 선정할 당시에도 성북구청은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이유로 단 한 곳도 추천하지 않다가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예산이 투입된 장위11구역을 뺀 성북5구역과 장위12구역을 뒤늦게 추천했다. 장위11구역은 공공재개발 추진 당시에는 예산이 배정되지 않았지만 올해 11억원이 투입되면서 2·4대책 후보지에서 제외됐다.

도시재생사업 후보지에서도 민간재개발을 추진할 수 있다는 서울시의 해석이 나온 뒤에도 성북구청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근에는 주민들이 재개발 추진을 위해 요구한 연번동의서도 반대 민원이 있다는 점을 들어 발급해주지 않고 있다. 연번동의서는 구청이 인증한 동의서로서, 이 서류가 없으면 추진위에서는 주민들의 동의서명을 받을 수가 없다.

송승현 도시와재생 대표는 “연번동의서를 발급해야하는 구청이 사업을 입안해야하므로, 반대 민원이 있어 동의율이 낮거나 건물 노후도를 충족하지 못해 사업이 추진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면 동의서 발급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찬성하는 쪽에서 민원들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동의서를 안내준다는 것은 구청이 재개발 사업 추진에 소극적인 상태라고 봐야한다”고 했다.

◇ 추진위 주민들 “이번이 마지막 기회”… 1인시위·행정소송 추진

재개발추진위원회 주민들은 성북구청을 대상으로 강도높은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도시재생사업 진행요건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항의성 민원을 성북구청에 접수했다. 도시재생사업은 수립·변경할 경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공청회를 거쳐야하는데 장위11구역에서 진행중인 전통시장연계형 사업은 이러한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성북구청 전경/연합뉴스

지난주부터는 추진위원회 주민들이 연번동의서 발급을 요구하며 구청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문주희 재개발추진위 대표는 “성북구청이 장위11구역 면적의 3%, 11%밖에 되지 않는 전통시장과 가로주택사업지구를 위해 전체 면적 소유주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사업에 찬성하는 주민들에게 동의서조차 걷지 못하게 하는 성북구청의 편파적인 행정처리를 규탄한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재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과도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문 대표는 “가로주택정비사업의 경우 현재 조합이 설립된 곳은 일단 제외하고 재개발을 신청한 뒤 혹 나중에라도 사업 참여를 원하는 곳이 있다면 포함시키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전통시장의 상인들의 경우 바로 옆 구역인 장위10구역에서 짓고있는 연동형 상가와 연결되는 상가를 지어 점포 이주를 지원하는 방법 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