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아파트에 2년을 실제로 거주해야 분양권을 준다는 규제 도입이 1년 만에 없던 일이 되며 억울함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고 무리하게 세입자를 내보내며 이사한 집주인은 물론, 생활 근거지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던 세입자도 분통을 터뜨리기는 마찬가지다. 덩달아 오른 전세금과 집값에 재건축 단지와 상관 없었던 무주택자 상당수도 고통스럽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애초 부작용만 키울 수밖에 없는 정책을 이제라도 정상화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정책을 번복한다는 지적을 받더라도 이처럼 시장을 왜곡하는 규제를 계속 철폐해야 부동산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9일 서울 강남구 대모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도심/연합뉴스 제공

◇ “누군가에겐 전 재산, 어떤 이에겐 은퇴 계획인데”

1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재건축 아파트 집주인의 2년 실거주 의무가 사라졌지만, 이 규제로 급등한 서울 강남구 은마아파트의 전세금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84㎡ 매물은 약 30여개 수준이다. 호가는 8억~12억원 정도다. 지난달에 새로 계약된 전세집은 9억원에, 계약갱신 청구권을 사용해 갱신계약이 이뤄진 곳은 4억9350만원에 거래가 됐다. 이중가격 문제도 여전한 셈이다.

은마상가 내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이제와서 집주인 거주의무를 폐지한다고 당장 이사를 나갈 집주인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은마아파트를 전세주고, 다른 곳에 전세를 얻으려는 사람들도 전셋값이 전국적으로 올라 옮기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은마아파트는 1979년에 준공한 오래된 아파트라 싼 가격에 전세를 놓고 다른 곳에 사는 집주인이 많았다. 대치동 학군지에 있어 전세 수요는 많은 곳이었다. 이 기존 수요에 임대차 3법과 실거주 의무 2년 규제가 맞물리면서 공급이 줄었고 작년 가을부터 전세금이 폭등했다.

규제는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꿨다. 은마아파트 소유주인 김모씨(63)는 “내가 이 나이에 학군지에 살 이유가 뭐가 있겠나. 실거주 의무 채우려고 인테리어에 돈 써가면서 들어온 거다. 규제가 없어졌더라도 인테리어값에 이사비를 이미 치렀으니 다시 나갈 일도 없다”고 했다.

학령기 자녀를 키우며 은마아파트에 전세를 살던 학부모 이정은(39)씨는 “집주인이 들어와 산다고 해서 갑자기 이사를 하게 됐다. 아이들 공부에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3억원이나 대출을 더 받아 근처로 이사했다”고 했다. 그는 “정책이 삶에 큰 영향을 줬는데 없던 일로 하겠다니 허탈하다”면서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한 정책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부동산 정책에 따라 삶을 설계했지만 손바닥 뒤집듯 바뀌며 큰 손해를 보게 된 사례는 또 있다. 민간임대사업자 정책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만 해도 다주택자의 임대주택 등록을 장려했다.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양도소득세 중과 배제 등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임대보증금 증액에 한계를 두고 특별한 사유 없이는 임차인과의 계약을 이어가도록 의무를 뒀다. 공공성 있는 임대주택을 늘리려는 시도였다.

처음에는 가입하려는 임대사업자도 많지 않았다. 임대소득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탓이다. 이에 국토교통부가 임대사업자 가입 현황 증가세를 꾸준히 홍보하기도 했다.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다주택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시고 세제 혜택을 받으시면 된다”고 홍보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 임대사업자가 주택을 사들여 집값이 오른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장려 대상이던 임대사업자는 순식간에 ‘적폐’로 몰렸다. 세제 혜택이 축소됐고 보증보험료 가입을 의무화했다. 신규 등록은 막았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임대사업자 자격을 자진해 내려놓으려고 해도 세입자가 거부하면 사업자 등록 취소를 할 수도 없었다.

갑작스런 정책 변화에 가장 어려워진 사람들은 은퇴 이후 임대소득으로 삶을 꾸리려던 이들이다. 상당수는 투기꾼과 무관할뿐만 아니라 자산가도 아니다. 손모씨는 “아파트를 정리하고 은평구 다가구 주택에 투자해 월세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 임대사업자로 등록했지만 정책 변경으로 노년 계획이 다 뒤틀렸다”면서 “이번에도 보증보험료를 내면 남는 것도 없게 생겼다”고 한탄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 기조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반발이 워낙 컸던 데다 안정적인 가격에 양질의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임대사업자를 없애면 전셋값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탓이다.

이렇게 되면 장려에서 폐지로, 다시 유지로 정책이 바뀌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는 셈이다. 국민의힘 유경준 의원실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등록임대아파트의 임대료는 시중 일반 아파트 임대료의 74.11% 수준이었고, 대전은 67.44%, 강원은 54.46%, 충남은 55.49%로 나타났다. 공공임대 못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 부동산특위 1차 회의 참석하는 윤호중, 진선미 의원/연합뉴스 제공

◇ 전문가들 “더 바꿔야 한다…양도세율 체계·임대차 상한률도”

상당수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가 재건축 실거주 규제를 없앤 일이 정책의 신뢰를 크게 훼손했지만,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잘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또 규제 완화에 속도를 더 내야 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이대로라면 내년 5월에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집값이나 전셋값이 속절없이 오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시장 매물을 감소시킨 규제부터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2017년 8·2 대책 이후로 25차례에 걸쳐 대책을 내면서 규제만을 거듭해왔다. 전문가들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규제로 꼽는 것은 양도세 중과다. 다주택자가 집값 상승분을 모두 가져가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있지만, 세금이 지나치다 보니 팔기보다는 보유 또는 증여하는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예 매물이 잠기는 역효과를 낸 셈인데 이를 시장에 이끌어내지 않고는 부동산 가격 안정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현재 규정에 따르면 1가구 1주택자가 주택을 2년 이상 보유하다 양도하는 경우 양도소득세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만 2017년 8월 2일 이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된 지역에서 주택을 취득한 경우에는 보유 기간 중 2년 이상 거주도 해야 비과세 요건을 갖추게 된다. 또 지난 6월부터는 단기간에 주택을 매매하면 양도차익의 7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2년 이내면 60%의 세율이 적용된다. 다주택자의 세율은 더 높다. 규제지역 내 3주택자가 집을 팔면 기본 세율에 30% 포인트까지 중과돼 지방소득세까지 합치면 양도차익의 82.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가 집을 팔아야 시장에 매물이 늘어나면서 집값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다주택자들의 양도세가 중과되는 현 상황에서 그들이 집을 팔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했다. 안수남 세무법인 다솔 세무사는 한국재정정책학회 학술대회에서 “양도세 강화가 매물 잠김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양도세율뿐만 아니라 복잡하게 꼬여 있는 세금 체계를 단순하게 재정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부동산 세제가 너무 자주 그리고 많이 바뀌다 보니 세무당국까지 헷갈릴 지경”이라며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국세청에 유권해석을 질의하는 사례도 부지기수”라고 덧붙였다.

전월세 상한제와 같은 시장 왜곡을 불러오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세입자의 권익 강화를 위해 계약갱신청구권이 필요할 순 있어도 전월세 상한제를 둬서 가격 문제를 시장에서 해결할 수 없게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4년간 5%로 상한을 두는 것은 지나치다. 재산권 침해 논란을 피할 수도 없다. 시장 논리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재건축 실거주 규제를 없앤 데 이어 민간 재건축을 방해하는 규제를 완화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정규 동의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 정부는 재건축을 투기로 보는 인식부터 바꿔야 할 것 같다”면서 “재건축은 주택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건축으로 도심의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층수 완화와 용적률 완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유예 등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면서 “재건축을 시작도 못하게 하는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부터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