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당선됐다. 20대 대통령선거에서 0.7%포인트(p)차로 고배를 마셨지만 3년 후 10%p 이상의 표차로 압승하며 승리를 거두게 됐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무(無)수저' 소년공은 거대 야당의 대표를 거쳐 21대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됐다.
이 대통령은 1964년 경북 안동에서 일곱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은 가난한 편이었다. 이 대통령은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소년공으로 일해야 했다. 이 대통령의 가족은 이후 경기 성남으로 이사했다.
이 대통령은 중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경기 성남 상대원동 공단에서 소년공으로 일했다. 공장 프레스 기계에 왼쪽 팔이 눌려 장애 판정을 받게 된 사고가 일어난 시기도 이때다. 이후 검정고시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뒤 장학금을 받는 조건으로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이 대통령은 1986년 제28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인권변호사이자 성남시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다. 판·검사 대신 변호사를 택한 이유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특강을 꼽았다. 이 대통령은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책무 사이에서 남모르게 번민하던 사법연수원 시절 노무현 인권 변호사의 특강이 제 인생의 방향에 빛을 비췄다”며 “시민과 함께하는 길이 제가 가야 할 길임을 알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2005년 8월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발을 들였다. 2006년에는 성남시장에 처음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고, 재도전 끝에 2010년 제5회 지방선거에서 성남시장에 당선된다. 이후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 대통령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도 성남시장 시절이다. 첫 임기 초반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해 주목받았다. 이후 무상교복, 무상 산후조리, 청년배당 등 보편적 복지사업을 추진하며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촛불 정국에서도 인지도를 높였다.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향해 ‘탄핵·구속’을 외치며 직설적인 발언을 이어갔는데 이를 통해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인 언변으로 팬덤이 형성되며 민주당 내 비주류임에도 존재감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대통령을 향한 도전은 2017년에 시작됐다. 2017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 참여해 21.2%를 얻었지만, 문재인 전 대통령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이후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 당내 경선을 거쳐 경기도지사로 당선되며 차기 대권주자로 체급을 키웠다.
민주당의 가장 강력한 대권주자로 체급을 키운 것은 지난 제20대 대선이었다. 이 대통령은 20대 대선 당내 경선에서 50.29%의 득표율을 얻으며 경쟁자였던 이낙연 전 대표를 여유 있게 따돌리고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겨룬 2022년 20대 대선에서 이 대통령은 47.83%를 득표했다.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과는 고작 0.73%포인트(p) 차이가 났다. 이 대통령은 대선 패배 후 해외로 나가는 대신, 곧바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첫 원내 입성이었다.
이 대통령은 원내에 입성한 지 두 달만에 민주당 당대표로 선출됐다. 지난해 총선에서 인천 계양을에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고, 민주당 당대표 연임에도 성공했다.
끊임없는 정치적 행보를 해야 했던 배경에는 사법리스크가 있었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권 기간 동안 사법리스크에 시달렸다. 지난해 11월에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으며 피선거권 박탈 위기가 닥쳤다. 같은 해 1월 부산을 방문하던 중 흉기 테러를 당해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다.
▲1964년 경북 안동 출생 ▲중앙대 법학 학사 ▲민선 5~6기 성남시장 ▲민선 7기 경기도지사 ▲제19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 ▲경기도지사 ▲제20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제21대 국회의원(인천 계양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제22대 국회의원(인천 계양을) ▲제21대 대통령선거 더불어민주당 후보 ▲제21대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