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12시 30분, 서울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 앞. 점심 식사를 마친 인근 직장인들이 목에 출입증을 건 채 길게 늘어서 있었다. 줄은 서울역사박물관 입구부터 주민센터까지 약 200m, ‘ㄱ’자 형태로 이어졌다. 평일 한낮, 사전투표를 위해 모인 유권자들의 행렬은 뜨거운 선거 열기를 실감케 했다.
회사원 김모씨(37)는 “1시간쯤 기다린 것 같다”며 “본투표일(6월 3일)에 특별한 일정이 생길 수 있어, 거주지가 아니어도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를 택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장인 정모씨(29)는 “마음에 드는 후보는 없지만, 차악이라도 뽑자는 생각에 왔다”고 했다.
이날 경기 성남시 분당구 삼평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역시 점심시간이 지난 오후 2시에도 100여 명에 가까운 유권자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투표소가 위치한 3층에 들어서지 못한 이들은 계단과 2층까지 줄지어 대기해야 했다. 판교 신도시가 위치한 분당구는 20~30대 회사원이 밀집한 곳.
이곳에서 게임사에 재직 중인 김모(32)씨는 “회사에서 투표를 독려해 시간을 내 미리 투표하러 왔다”며 “이번에는 IT 업계와 관련된 공약을 내놓은 후보가 있어 그를 찍었다. 앞으로 대통령이 IT 산업 발전에 힘써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인근에 거주한다는 유세림(33)씨는 “최근 큰 혼란을 겪은 만큼, 이를 잘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아야겠다는 마음으로 투표했다. 국제적으로 어려운 상황도 많아, 당선자가 이를 잘 해결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전체 유권자 4439만1871명 가운데 466만6252명이 투표를 마쳤다. 10명 중 1명(투표율 10.51%)이 사전투표에 참여한 셈이다.
이는 2022년 20대 대선 동시간대 투표율(8.75%)보다 1.76%포인트, 지난해 22대 총선 동시간대(8.00%)보다 2.51%포인트 각각 높은 수치다. “평일이라 투표율이 저조할 것”이라는 우려를 보기 좋게 뒤엎은 결과다.
2013년 도입된 사전투표제는 해마다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사전투표율은 36.93%로 역대 최고였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올해도 40%대에 육박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사전투표는 다음날인 30일까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유권자는 별도 신고 없이 전국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다. 투표소를 찾은 이들은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사전투표율이 전체 투표율의 절반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지면서, 주요 대선 후보들도 첫날부터 사전투표소를 찾았다.
사전투표 부정 의혹을 제기했던 김문수 후보조차 ‘이재명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에서 직접 투표에 나섰다. 김 후보는 “소통 대통령”을, 이재명 후보는 “경제 대통령”을 각각 내세우며 차별화에 집중했다. 이 후보는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지역구인 경기 화성시 동탄9동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사전투표했다.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여수 산업단지를 찾은 뒤 인근 주민센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
이날 사직동 주민센터에서 투표에 나선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은 기자들과 만나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사전투표에 참가하셔서 놀랐다”며 “특히 젊은 분들이 많이 나온 것 같다. 민심을 흔히 물에 비하는데, 수면 위로 튀어 오르는 물방울만 보지만 속은 굉장히 출렁거리면서 거대한 힘으로 움직인다. 정치인들이 보지 못한 어떤 힘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다만 부정선거 우려로 보수 유권자 일부는 여전히 사전투표를 기피하는 경향이 확인된다. 황교안 무소속 대통령 후보는 “참관인이 실제 투표자를 센 숫자와 선관위 모니터 상에 나타난 숫자가 차이가 난다”는 식의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