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자본시장 투명성 강화와 소액 주주 권익 보호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3일 본회의에서 합의 처리했다. 기업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하고, 감사위원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하는 ‘3% 룰’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의 독립이사 전환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3일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개정안은 윤석열 정부 당시 대통령 거부권(재의요구권)으로 폐기됐던 법안을 여야가 합의해 부활시켰다는 점에서 ‘이재명 정부 1호 협치 법안’으로 평가된다. 코스피가 3년 6개월 만에 3000선을 회복하며 주식시장에 활기가 도는 가운데, 1400만 개미 투자자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여야가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한 것이다.

여야는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상법 개정안을 상정·표결해, 재석의원 272인 중 찬성 220표, 반대 29표, 기권 23표로 가결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본회의장에선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 개정안은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 대해서도 충실의무를 지도록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소액주주의 권익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로, 기존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견제하겠다는 취지다. 감사위원 선출 시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규정도 사외이사에게까지 확대됐다. 그동안 사내이사에만 적용되던 이 조항을 사외이사에게까지 확대하면서, 감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대주주의 영향력이 제한되고 외부 감시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정치권은 기대하고 있다.

상장회사가 전자 주주총회를 오프라인 총회와 병행 개최할 수 있도록 하고,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는 전자주주총회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는 내용도 담았다. 사외이사의 명칭을 ‘독립이사’로 변경하고, 이사회 내 독립이사 비율도 종전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상향했다.

이러한 내용은 지난 3월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본회의에서 통과시키고, 윤석열 정부가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면서 자동 폐기됐던 상법 개정안보다 센 내용이다. 당시엔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와 ‘전자 주주총회 개최 의무화’ 등만 담았다.

전날 여야는 국회에서 막판 협상을 통해 상법 개정안 처리에 전격 합의했다. 주주 충실의무 확대, 전자주총 의무화, 독립이사 전환 등 주요 쟁점을 합의한 데 이어 끝까지 쟁점이던 ‘3% 룰 확대’도 이번 상법 개정안에 포함하기로 했다.

다만, 감사위원을 현행 1명에서 2명 이상 또는 전원으로 확대 선출하는 방안과, 소액주주들이 특정 이사 후보에게 몰표를 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 도입은 이번 상법 개정안에선 제외하고 향후 공청회를 통해 각계 의견을 수렴한 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여야는 또 재계 우려를 고려해 형법상 배임죄의 면책 규정 개정을 향후 추진하기로 했다. ‘경영상 판단은 예외’라는 원칙을 배임죄 규정에 넣어 위법성 조각 사유를 인정토록 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국민의힘 관계자는 전했다. 위법성 조각이란 법에 어긋나는 위법 행위를 했지만, 특별한 사유로 처벌받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상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하면서 여당인 민주당은 ‘민생 개혁 법안 독주 처리’ 비판을 피하고, 국민의힘은 재계가 강하게 반발해 온 일부 조항들을 유보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그간 경영 판단 위축과 소송 남발 등 부작용을 우려하며 상법 개정안을 반대해왔다. 대신 상장 기업에 한해 상장기업의 인수합병 과정에서 소액 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을 추진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최근 송언석 원내대표가 “상법 개정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입장을 선회하면서 여야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우리는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에 대해 반대했다. 주주가 직접 이사에 충실 의무 위반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상황이 온다는 것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일 수 있다고 예상하고 판단했던 것”이라면서 “다섯 가지의 민주당 안이 그대로 통과되면 기업은 대혼란이 오기 때문에 저희가 참여해서 차악을 할 수 있게 노력했고 합의를 이뤄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내에선 여전히 상법 개정안 처리에 반대 의견을 밝힌 의원들도 있었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3선·충남 서산시태안군)은 이날 “주주에 대한 이사 충실 의무 확대, 전자주주총회 도입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의결권 3% 제한은 동의할 수 없다”면서 “이 법이 통과되면 기업의 경영은 지나치게 위축되고 방어적인 경영에만 치중하게 되어 향후 국가경제에 치명적 해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