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했다가 무산됐던 ‘주식시장 활성화’ 입법을 이재명 정부 출범 후 재추진하겠다며 입법 드라이브를 건 것이다. 경영 판단 위축, 소송 리스크 확대 등 경재계의 우려에 대해선 개정안을 우선 시행한 뒤 보완 방안을 추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6단체와의 간담회 후 김남근 민주당 민생부대표는 “국민과 시장의 신뢰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지금 나와 있는 상법 개정에 대해선 신속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다음 달 7월 4일 끝나는 6월 임시국회 내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앞서 당론으로 채택한 5대 상법 개정안 방안을 이번에도 그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 ‘회사 및 주주’로 확대 ▲전자주주총회 개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단계적 확대 ▲집중투표제 도입 ▲독립이사제 도입 등이다.
김 의원은 “이사회의 지배 구조에서 투명성과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이라며 “원칙적으로는 다섯 가지가 함께 입법돼야 한다”고 했다. 오기형 당 ‘코스피5000특위’ 위원장도 “이사회 구성 과정을 보완하고, 이사가 의사결정하는 행동 준칙을 바꾸자는 것으로, 하나의 패키지”라고 설명했다.
이들 과제는 과거 윤석열 정부에서도 추진했지만 재계와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의 반발, 대통령 재의요구권 행사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이번에는 5대 과제를 모두 포함하는 것은 물론 3% 룰을 추가하고 시행 유예 기간을 삭제하는 등 보다 강력해진 상법 개정안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3% 룰은 감사위원 선임 시 최대 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합산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내용으로, 대주주의 입김을 제한한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감사위원을 사내외 이사와 따로 선출하는 재도를 도입했고, 이때 3%룰을 추진했다. 당시엔 재계와 야당의 반발로 사내 이사에 대해서만 ‘특수관계인 합산 3%룰’을 적용시켰는데, 이 범위를 당초 입법 취지에 맞게 ‘사외 이사’에게도 적용하겠다는 취지다.
민주당은 이번 개정을 통해 상장사의 이사회 구조를 ‘책임지는 이사회’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무산됐던 개혁 과제를 이재명 정부가 정면 돌파하면서 “개혁 드라이브의 첫 신호탄”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상법 개정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해온 ‘자본시장 선진화’와 ‘지배구조 투명화’를 구현하는 핵심 과제로, 새 정부 출범 이후 주식시장 제도 개혁의 첫 모델을 제시한다는 의미도 지닌다.
◇재계 “소송 남발 우려”… 與 “배임죄 폐지 등 추후 논의”
간담회에 참석한 재계는 배임죄 적용 확대, 소송 남발 가능성, 경영판단의 원칙 훼손, 중소·중견기업의 부담 등을 우려하며 시행 기간 유예나 법적 명문화를 요청했다.
김 의원은 “전체적으로 소송 남발과 배임죄가 확대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라며 “대기업에선 이사의 주주충실의무나 전자주주총회 의무화를 먼저하고 나머지는 시간을 두고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중소·중견기업은 주로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와 관련해 규모가 작은 비상장 기업은 유예를 두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 소송 남발 대안으로 언급되는 상법상 특별배임죄 폐지 방안은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담기지 않을 예정이다. 상법 622조에 따르면 배임으로 회사에 손해를 가하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 등은 배임죄를 명문화하지 않고 개인 간 손해배상 등으로 해결토록 하고 있어, 재계에선 경영 판단 위축을 최소화하기 위해 배임죄 폐지론을 거론해 왔다.
오 의원은 “형사적 책임을 과다하게 확정할 필요는 없고 필요하면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까지 공감했다”면서도 “개별 법 조항에 대해선 지금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다. 하반기에 수차례 논의하면서 정기국회 과정에서 처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도 “경영상 판단의 원칙을 법원이 통제하고 있기는 하다. 다만 명확히 하기 위해 판례 내용을 명문화하자는 이야기는 논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법 개정 후에 논의하면 될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대선 공약에 포함됐던 ‘자사주 소각’ 등도 이번 상법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고 향후 별도로 논의할 예정이다. 오 위원장은 “자사주 문제는 이번 논의대상에서 빠졌다.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이 지점에 대해선 하반기에 논의 절차를 따로 거치겠다”고 말했다.
향후 논의는 민주당 내 ‘코스피5000특위’를 중심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김 의원은 “상법이 개정되면 추가로 해야 할 제도 개혁 과제들이 있는데, 코스피 5000특위를 중심으로 재계와 의견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가면서 입법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합의 처리 가능성… 野도 “상법개정안 전향적으로 검토”
민주당은 6월 국회 내 처리 시점을 못 박으며, 필요시 단독 처리 가능성도 열어뒀다. 김 의원은 “코스피 시장이나 국민 신뢰의 문제가 있다”면서 “마냥 시간 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당론으로 반대해왔던 국민의힘도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입장을 선회하면서 합의 처리도 전망된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최근 일부 기업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하는 주주권 침해 문제 등 시장변화를 고려해 상법 개정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하기로 했다”고 했다. 다만 상법 개정안과 함께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세제 개혁도 패키지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 의원은 “늦었지만 국민의힘이 그런 입장이라면 지금이라도 법사위 논의 때 적극적으로 처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