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좀처럼 당 내홍의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은 5대 당 개혁안을 완수하겠다며 이달 말까지인 임기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다만 당내 투톱인 권성동 원내대표까지 사실상 물러나면서 중지를 모으지 못하고, 지도부 개편과 쇄신 방향은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선출을 위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원내대표 경선 일정 관련 브리핑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대선 패배 후 엿새째인 이날도 국민의힘은 당 쇄신 방향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했다.

박형수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오후 의원총회 후 결과 브리핑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며 “내일 다시 의원총회를 개최해 결론을 내야 할 부분들을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당내 회의 개최 등으로 10일 의총을 열지 않는다고 재공지했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의총은 5시간 넘게 마라톤 토론이 이어지면서 총 27명이 발언했다. 이 자리에선 특히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취 문제, 김 위원장이 제시한 5대 당 개혁방안이 논의됐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거취에 대해선 의견이 반반으로 갈린 것으로 알려졌다. 친윤 의원들 중심으로는 김 비대위원장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는 의견이 분출했지만, 친한(한동훈)계를 중심으로 한 당내 소장파는 김 비대위원장이 개혁안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복수의 참석자들은 전했다.

당초 친한계는 대선 패배 원인으로 당내 ‘친윤 구태 세력’을 지목하고, 권 원내대표와 김 위원장 등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해왔다. 새로운 원내대표 체제에서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전당대회를 치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전날 5대 당 개혁안(▲9월 전당대회 개최 ▲대통령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대선후보 부당 교체 진상 규명 ▲100% 상향식 공천)을 제시하면서 쇄신파 내부 기류는 달라졌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왼쪽)과 사퇴를 표명한 권성동 원내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있다. /뉴스1

‘6선’ 조경태 의원은 “친윤 성향 의원들은 김 위원장에 대해 상당히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심지어 ‘빨리 물러나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렇게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김 위원장이 그나마 어제 혁신안을 낸 것이 우리 당을 살리고 더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를 잘 대비할 수 있는 혁신안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지도부가 구성될 때까지는 (김 위원장 체제로) 가야 한다고 밝히고 나왔다”고 전했다.

김상훈, 강승규, 임종득 의원 등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김 위원장이 즉각적으로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재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선거를 패배했으면 원칙에 따라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며 “쫓아내려는 게 아니다. 나는 다시 추대해서 힘을 더 실어주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거취를 두고 내홍이 짙어지자 김 위원장은 이날 의총에서 전당원 투표로 결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다만 이에 대해 의총에 참석한 다수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면서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오는 30일까지 임기를 유지하고, 오는 16일 선출되는 신임 원내대표가 다음 달부터 ‘관리형 비대위원장’을 새로 선임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비대위원장 지명권을 가진 신임 원내대표가 새 비대위를 꾸리지 않고 당 대표 권한대행을 겸임할 가능성도 있다.

이날 의총에선 김 위원장이 제안한 ‘탄핵 반대 당론 무효화’ 등 쇄신안을 두고도 격론이 벌어졌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반대 당론을 사후에 변경한 사례가 있는지, 또 변경했을 때의 실익은 무엇인지, 가능하겠느냐 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며 “그 부분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지는 않고 정치적인 부분들로 녹여낼 수 있는 다른 방안이 있는지 함께 검토해 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당내 강경 쇄신파는 “지난 의원총회에서 잘못된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성한다는 의미에서 당론으로 한 건 철회하자는 것(우재준 의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친윤계’인 강승규 의원은 “저 역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수단을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러나 비대위원장의 한 마디로 총 30번의 정부 인사 ‘무고 탄핵’과 국회 권력 독점, 이재명 대통령 방탄용 사정기관 협박, 행정부 예산권 무력화 등의 비상계엄 유발원인은 없던 일이 돼버리는 건가”라며 “자칫, 의원총회를 친윤집회로 몰아세우려는 레거시 미디어들의 프레임에 비대위원장이 올라타 자기 정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일부 의원들 중에는 “(탄핵에 반대할 당시) 이재명 대표의 시간을 벌기 위해 탄핵을 연기하자고 했었지, 당론으로 정한 건 없다”는 이야기도 것으로 알려졌다.

무용론도 나왔다. 박덕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당론으로 정해서 이미 가결됐다. 그러면 이미 끝난 사안”이라고 했다.

다만 ‘대선 후보 교체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관련해선 당무감사를 실시하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고 한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많은 의원들이 말했는데 거의 모든 의원들이 후보 교체에 대한 당무 감사를 실시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며 “다만 그 취지에 대해선 당원들이 궁금해 하니 그걸 밝힐 필요는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견을 보였던 차기 전당대회 시점도 8월 말 개최하는 방향으로 뜻이 모였다고 한다. 당초 전당대회 시기를 두고 친한계는 조속힌 개최를, 당 주류인 친윤계는 시간을 갖고 개최하자는 입장이었다. 박 원내수석부대표는 “한 두 분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분들이 9월 이전 또는 8월까지 전당대회를 빨리 개최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