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

이재명 대통령이 여의도 정치의 중심에 선 건 채 몇 해가 되지 않는다. 첫 대선 후보가 됐을 때 조명을 받은 조직이라곤 성남·경기라인과 7인회 정도였다. 20대 대선에 패배한 2022년 5월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로 원내 진입했을 때도 ‘변방 사람’으로 불렸다. 측근이라 할 현역의원 그룹이 마땅치 않았다는 뜻이다. 당대표에 오른 뒤에야 중앙정치 무대에서 신(新)친명계가 구축됐고, 22대 총선과 대표직 연임을 거쳐 당을 장악했다. 그런 만큼 측근의 분파도 다양하다.

그래픽=정서희

◇성남·경기라인 4인방

이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온 사람들은 ‘성남·경기 라인’이다. 지금의 이재명을 만든 이들이다. 그 중에서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건 이재명 의원실 김현지 보좌관이다. 두 사람의 인연만 27년에 달하지만, 언론에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당에 오래 몸 담은 보좌관·당직자들의 평도 “(국회) 구내식당에서만 보이는 그림자같은 존재” “후보와 독대해 일정도 바꾸는 실세” 등 제각각이다. 1995년 변호사였던 이 대통령이 주도해 설립한 ‘성남시민모임’에서 사무국장을 맡으며 첫 연을 맺었다.

김남준 전 당대표실 정무부실장은 ‘이재명의 입’으로 불린다. 성남 지역 언론인 출신 참모다. 성남시청 대변인, 경기지사 언론비서관, 의원실 수석비서관을 거쳐 2022년 대선 경선 캠프 대변인을 맡았었다. 김현지 보좌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이 당대표 시절 “대표 의중은 누구한테 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 전 부실장을 언급한 일화도 있다. 최측근 참모만 접근할 수 있는 일정 총괄로, 선대위에서 비서실 일정팀 수장을 지냈다.

이들 외 공식 활동이 불가한 ‘투톱’도 있다.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다. 정 전 실장은 지난 총선 당시 ‘비명횡사’ 공천의 막후 기획자로 알려져 있다. 대체불가 ‘복심’이지만,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관련 주거 제한 등 법원 결정으로 공식 활동은 할 수 없다. 이 대통령이 “제 분신(分身)과 같다”고 했던 김 전 부원장도 대장동 건으로 법정 구속 상태다. 경기도지사 인수위원회 대변인, 경기도청 대변인, 20대 대선 선대위 총괄 부본부장 등을 지냈다.

‘이재명 친위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 강위원 상임고문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5기 의장을 지낸 원외 인사다. 민주당 주류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중심의 86(80년대학번·60년대생)그룹과는 결이 다르다.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였던 2019년 경기도 산하 기관인 경기도농수산진흥원을 이끌었고, 2022년 대선 때 캠프 요직인 일정총괄팀장을 지냈다. 지난 총선에서 비명계 현역 물갈이를 조직적으로 압박했고, 막강한 원외 조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원초 친명 ‘7인회’

이 대통령이 처음 대권에 도전한 2017년엔 친문(親문재인)계가 당을 장악한 시기였다. 이때만 해도 정치인 이재명은 ‘비주류 중 비주류’였다.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와 논쟁을 벌였다가 문파(文波·문재인 대통령 강성 지지자)의 엄청난 공격을 받기도 했다. 2022년 대선 때까지도 강성 문파 사이에선 ‘이재명 아웃, 윤석열 당선’ 운동이 번졌을 정도다. 그만큼 현역 그룹 지지세가 약했기 때문에 원조 측근이라 할 의원도 소수다.

전현직 의원급에선 7인회(김영진·문진석·정성호 의원, 김병욱·김남국·이규민·임종성 전 의원)가 있다. 2017년 대선부터 지원한 ‘원조 친명’ 그룹이다. 이 중 김영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선대위 상황실장을, 이번엔 정무실장을 맡았다. 이 대통령의 중앙대 후배로, 내각 구성을 포함한 각종 인선 시나리오에 1순위로 회자된다.

선대위 인재위원장인 정성호 의원은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재명 당대표 시절 강성 지지층이 불편해 할 만한 얘기도 기탄 없이 할 만큼 신뢰가 구축된 관계다. 이재명 내각과 대통령실 인선 밑그림 작업의 중심에 있다. 사업가 출신이자 충남도당위원장인 문진석 의원은 중대 82학번 동기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성남에서 ‘가난한 유년기’를 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코인 투기 논란으로 탈당했던 김남국 전 의원도 원조 측근으로 꼽힌다. 선대위 정무부실장으로 복귀했다. 역시 ‘중대 라인’이다. 손학규계로 정계 입문한 김병욱 전 의원은 재선을 지낸 금융통이다. 손학규 전 대표 탈당 당시 김 전 의원은 잔류했고, 이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연을 맺었다. 원외 인사지만 당내 특별위원회 등 경제 정책 조직에서 대선 공약 작업을 도왔다.

‘이재명표 기본소득’을 설계한 이한주 민주연구원장도 30여년 전부터 성남 시민운동으로 맺어진 관계다. 2010년 성남시 모라토리움(지불 유예) 선언, 무상교복·청년배당 등이 그의 작품이다. 이번 대선에선 선대위 정책본부 공동본부장을 맡아 이재명표 정책을 설계했다.

◇‘新친명' 이재명 2기 체제서 부상

민주당은 21대 총선을 계기로 사실상 당 전체가 거대한 ‘이재명 캠프’가 됐다. 극소수 친문(親문재인)계 외에 비명계는 공천에서 대거 탈락하고, 친명을 자처한 원외 인사 다수가 강성 지지층의 힘을 입어 공천권을 따냈다. 통상 대선 후보와 달리,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외곽 조직을 굳이 만들지 않았던 이유다. 특히 두 차례 당대표직을 맡으면서, 인물은 물론 당헌·당규 등 조직 자체도 이 대통령에 최적화 했다. 오히려 ‘찐명(진짜친명) vs 신친명(새로운친명)’ 구도로 분화한 식이다.

대표 주자는 박찬대 원내대표다. 지난해 4월 원내대표 경선 때 이재명 당시 당대표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라이보 방송에 그를 불러 “고생이 많다” “국민 잘 모시는 우리 후보”라고 치켜세웠다. 사실상 ‘이재명이 지명했다’는 평이 나왔다. 결국 출마를 준비하던 의원 다수가 전부 포기를 선언했고, 민주당 역사상 전례 없는 ‘단독 입후보자’가 됐다.

86 운동권 대표격인 김민석 수석최고위원도 핵심 인물이다. 최고위원 경선 때 “김민석 표가 왜 이렇게 안 나오냐”는 이재명 당시 당대표 발언 직후, 지역 순회 득표율에 속도가 붙으며 단숨에 1위에 올랐다. 당대표 비서실장·전략기획위원장을 지낸 천준호 의원, 조승래 수석대변인, 선대위 종합상황실장인 강훈식 의원도 신친명계 인사들이다. 각각 박원순계, 정세균계, 손학규계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 대통령 본인도 이해찬 전 대표의 지원을 받아 당권을 쥐었다. 그만큼 전 계파를 흡수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뜻이다.

이들 중 다수는 이재명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 또는 수석급, 장관에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장과 원내대표 후보로도 회자된다. 민주당은 당장 이달 중순 원내대표 경선을 치른다. 새정부 출범 직후 집권당 원내사령탑인 만큼, 대통령 의중이 십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특정인 기용설이 돌아 당선인 귀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그대로 ‘아웃’”이라며 “입각을 바랄 수록 입에 오르내리는 걸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