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수(74) 국민의힘 경선 후보가 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1970년대 노동운동 1세대부터 ‘아스팔트 우파’까지 아우르는 김 후보는 흔치 않은 정치적 궤적을 보여주는 정치인이다.
김 후보는 1951년 경북 영천에서 4남 3녀 중 여섯째로 태어나 판자촌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김 후보는 경북중·경북고를 거쳐 1970년 서울대 상대(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김 후보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 모임 ‘후진국 사회연구회’에 들어가 활동하다 1971년 전국학생시위,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두 차례 제적됐다. 이후 25년 만에 졸업했다.
김 후보는 제적된 이후 1972년부터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단보조공으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위장 취업으로 전국금속노조 한일도루코에 입사해 노조위원장을 지내며 노동운동에 깊숙이 뛰어들었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전태일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1986년에는 5·3 인천 민주항쟁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2년 동안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당시 운동권에서 김 후보의 존재감은 컸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김 후보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졌고 심상정 전 정의당 대표는 “동지로 지내던 시절의 김문수는 전설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1990년 초 구소련의 붕괴를 지켜보며 보수로 전향했다.
김 후보는 이재오·장기표 전 의원 등과 1990년 창당한 민중당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고 이후 1994년 김영삼 민주자유당(국민의힘 전신) 총재의 권유로 입당했다.
이후 1996년 15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제도권 정치를 시작했다. 김 후보는 15·16·17대 연이어 3선에 성공했고 경기도지사 연임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2011년 도지사 시절 119에 전화해 관등성명을 요구한 사건 이후부터 정치적 내리막길이 찾아왔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과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연이어 낙선하며 10년 가까이 야인으로 지내야 했다.
아스팔트 보수로 활동하던 김 후보는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정치 무대에 올랐다. 윤석열 정부에서 김 후보는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직을 맡았다.
김 후보는 국무위원 임기 중에도 강성 발언으로 주목을 받으며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특히 지난해 국회 긴급현안질문에서 민주당 의원이 계엄 선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을 때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들이 일어나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와중에 김 후보 홀로 이를 거부한 채 자리를 지키기도 했다.
▲1951년 경북 영천 출생(74) ▲경북중·경북고 ▲서울대 경영학과 ▲15·16·17대 국회의원 ▲제32·33대 경기도지사 ▲경제사회노동위원장 ▲고용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