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신조어의 주인으로 알려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1일 국무총리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권한대행 역할은 한 대행이 면직되는 2일 0시를 기준으로 의전서열 차기 순번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날 국무총리직을 내려 놓으며 사실상 6·3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덕수 총리는 경제·통상 분야에 탁월한 엘리트 관료로 분류된다.
1949년 전북 전주에서 출생한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1970년 행정고시 8회로 공직을 시작했다.
1979년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 경협총괄과 사무관을 지냈으며, 상공부 미주통상과장과 아주통상과장을 지냈다. 미주통상과장 이후엔 미국으로 연수를 가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았다. 1990년 이사관 승진과 함께 상공부 산업정책국장으로 보직됐다. 이어 1993년 4월 김영삼 정부 때 대통령비서실 경제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통상무역실장,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까지 지냈다.
김대중정부 때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취임했다.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을 역임했다.
노무현정부에서도 그의 역할은 계속됐다.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후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은 데 이어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불리는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대사로 3년간 근무했다. 박근혜 정부 땐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 尹정부 초대 총리로 복귀... ‘대행’에서 ‘대망론’으로
그는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재차 국무총리로 취임했다. 호남 출신 인사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요직을 지냈다는 점에서 당시 야당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12.3 계엄 사태로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후, 대통령 권한대행 직을 수행했다. 이후 작년 말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논란으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그에 대한 탄핵 소추가 의결되면서 직무가 정지되기도 했다.
3월 24일 헌재가 ‘탄핵 요건이 되지 않는다’고 ‘기각’ 결정을 내리면서 직무에 복귀했다. 그는 직무 복귀 후 대국민담화에서 “극단으로 갈라진 사회는 불행으로 치달을 뿐, 누구의 꿈도 이루지 못한다”며 “여야와 정부가 정말 달라져야 한다. 저부터 그렇게 하겠다”고 정치권의 변화를 촉구했다.
복귀 이후 한 권한대행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미 정상 통화를 하고, 양국 통상 협의의 물꼬를 텄다. 이후 한 권한대행은 대미 협상과 관련해 “필요한 경우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소통을 통해서 해결점을 만들어 나가도록 노력하겠다”며 정상간 관계가 돈독하다는 점을 은연 중에 내비치기도 했다.
이 때부터 ‘한덕수 대망론’이 불지펴지기 시작했다. 여론조사 정치인 지지도 조사에서 한 대행의 이름이 나온 것도 지난달 11일 한국갤럽 정기 여론조사가 처음이었다.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을 대상으로 무선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한 대행은 2%의 지지율을 얻었다. 첫 등장 당시 미미했던 한 대행의 지지율은 대망론을 타고 수직 상승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4사(社)가 공동으로 지난달 28~30일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으로 진행해 1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13%의 지지율로 보수 진영 후보 중에서 선두를 차지했다. 특히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이 32%로 가장 높았고 한동훈 후보(21%), 김문수 후보(15%)가 뒤를 이었다.(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를 놓고 야권과 충돌한 것도 보수 진영 내 한덕수 지지층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한 대행은 퇴임하는 헌법 재판관 2명의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하지만 민주당이 반발했고, 헌재가 ‘효력정지 가처분’을 내리면서 무산됐다.
이후 민주당은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헌재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한 대행은 해당 법안에 대해 “삼권분리에 어긋난다”며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을 행사했다.
◇ 별명은 ‘철벽 총리’... 솔선수범 행정도 호평
한 대행은 윤석열 정부 국무총리 재임 기간 ‘철벽 총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국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대정부 질문에서 야당과의 설전에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숫자에 강해 각종 경제 지표 등 ‘팩트’(사실) 경쟁에선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24년 9월 10일 대정부 질문 때 민주당 의원들이 ‘일본 총리같다’고 야유하자, “모욕 하지 말라. 국민을 움직이는 정치의 힘은 모욕과 능멸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전북 부안 새만금 지역에서 열린 잼버리 현장이 준비 부족으로 각국에서 온 청소년들이 불편함을 겪자, 직접 현장으로 가 화장실을 청소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인당 국민소득이 254달러였던 1970년 공직을 시작한 한 총리는 국무총리에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냈다. 한국이 ‘한강의기적’을 이루는 과정을 공직 최일선에서 지켜본 인물이다.
한덕수의 경험과 관록이 6·3 대선에서도 빛을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덕수
▲1949년 전북 전주 출생 ▲1967년 경기고 졸업, 서울대 경제학과 입학 ▲1970년 제8회 행정고시 합격 ▲1971년 서울대 상과대학 수석 졸업 ▲1971년~1974년 육군 복무(병장 만기 전역)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 조정과장 ▲상공부 미주통상과장 ▲상공부 아주통상과장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통상산업부 통상무역실장 ▲특허청장 ▲통상산업부 차관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경제수석 ▲산업연구원장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 ▲주미대사 ▲한국무역협회장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