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지만, 더불어민주당 주류인 친명(親이재명)계의 강경 노선은 한층 심화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때까지 대통령 권한대행의 인사권 박탈을 주장하는가 하면, 개헌을 제안한 국회의장에 욕설 수준의 막말을 내뱉는 식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재탄핵 주장도 거론된다. 당내에선 이런 태도가 ‘이재명 포비아’를 키워 중도 표심에 악재가 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윤종군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8일 당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한덕수가 스스로 탄핵을 유도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지도부 회의에서도 탄핵이 거론됐다. 송순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전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대행은 내란 선동에 앞장선 국민의힘과 함께 심판해야 한다”고 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도 SBS 라디오에서 “헌법재판관 후보를 임명하지 않으면 여전히 (탄핵안 발의가) 유효하다”고 했다. 당 차원에선 언제든 발의할 수 있도록 이미 탄핵안을 마련해뒀다고 한다.
특히 개헌을 둘러싼 ‘비명계 때리기’가 극심해졌다. 시작은 우원식 국회의장의 ‘개헌 국민투표’ 제안이었다. 앞서 우 의장은 지난 6일 “이번 대통령 선거일에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동시 시행하자”고 했다. 극단적 대결 정치를 끝내자는 정치 개혁 요구를 조기 대선에 맞춰 실시하자는 이유였다. 이재명 대표도 지난 대선 때 개헌을 공약했었다.
그러나 4선 중진인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회의장 놀이 그만하라”며 공개적으로 우 의장을 비난했다. 같은 날 “제발 그 입 닥쳐라. 개헌은 개나 줘라”(양문석 의원)는 욕설도 나왔다. 강성 친명 당원이 모인 당 게시판에도 원색적인 표현들이 쏟아졌다. “수박(비명계를 비방하는 말)은 박살냈어야 한다” “당원투표로 우원식을 끌어내려라” “개헌 얘기하는 놈들은 다 내란 세력” 등의 글이 줄줄이 달렸다.
강경파는 국민의힘을 향해선 ‘대선 불출마’ ‘권한대행 인사권 박탈’도 주장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국민의힘이 1호 당원 내란수괴 윤석열을 징계도 하지 않고, 대선까지 윤리위원회 개최도 계획하지 않았다”면서 “이정도면 위헌 정당 확정이다. 무슨 염치와 자격으로 대선 후보를 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새 정부 출범 때까지 고위 공직자와 공기업 등 인사를 전면 동결해야 한다”고도 했다. 반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말기 방송통신위원장, 한국마사회장 등 고위 공무원과 공공기관장 인사를 단행했었다. 그런데도 박 원내대표는 한 대행 체제에서 공공기관 채용과정 등 인사 전반을 조사해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김민석 최고위원도 “중립적인 대선 관리 의무에 어긋난다”며 인사권 행사를 문제 삼았다.
내부 우려도 있지만, 민주당에선 이런 말 꺼내는 것 자체를 쉬쉬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청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최고 권력이었던 윤석열은 이미 파면됐다. 이후엔 누가 심판 대상이 되겠느냐”면서 “의회 170석에 행정, 사법권력까지 가질 거란 ‘이재명 포비아’가 분명히 있다. 이걸 놓치면 거부감만 키운다”고 했다. 또다른 수도권 재선 의원은 “대표가 외부 회견이라도 하면 뒤에 누가 서있나, 눈도장 찍느라 일정 다 제쳐두고 나가는 게 지금 당 분위기”라고 했다.
박성민 정치컨설틴 민 대표는 통화에서 “이 대표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받은 순간 사실상 ‘내부 경쟁’은 사라졌다”면서 “이 대표가 약화시켜야 할 건 국민의힘이 아니라 反이재명 정서”라고 했다. 또 “압도적 의석에 행정권을 갖고,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해 사법권도 넘보게 된다“면서 “이런 포비아를 불식시키는 방향으로 주요 선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