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과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연계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임기(5년)와 기관장 임기(3년)가 달라 정부 출범 때마다 혼란이 극심해서다. 쫓아내려는 새 정부와 버티는 기관장이 충돌하는 식이다. 공공기관은 정권 말 낙하산 인사의 온상으로도 꼽힌다. 여야 모두 ‘알박기’ 근절을 약속했었지만, 정작 정권을 잡으면 발을 빼는 수순을 반복해왔다.
28일 조선비즈 취재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박상혁 의원이 지난해 6월 대표발의한 ‘공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안’(이하 공운법) 개정안을 논의하기 위해 국민의힘에 상임위 개최를 제안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여야 간사 협의 과정에서 이르면 내주 중 법안심사소위원회와 전체회의를 여는 방안도 거론됐다고 한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장도 전날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2인 체제로 신동호 EBS 이사를 신임 사장으로 임명한 것을 언급했다. 진 의장은 “위법까지 저지르면서 알박기를 강행했다”며 “공공기관 운영법을 개정해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임기를 일치시키겠다”라고 했다.
현행법상 공기업·준정부기관 기관장 임기는 3년, 이사와 감사는 2년을 보장한다. 경영 실적 등을 고려해 1년 단위 연임이 가능하다. 대통령 임기와 엇갈려 새 정권이 기존 기관장 사직을 압박하거나 중간에 교체하는 일이 빈번하다. 개정안은 ▲기관장·임원 임기를 2년으로 줄이고 ▲1년 연임으로 제한하되 ▲임명한 대통령의 임기 종료시 이들의 임기도 만료된 것으로 간주토록 했다.
◇소급 적용 안 돼도… 정치 쟁점화에 번번이 좌절
민주당의 법 개정 시도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조기 대선이 회자되는 가운데 나왔다. 당 정책위는 최근 ‘윤석열 정권 알박기 인사 명단’ 106명을 공개했다. 특히 12.3 비상계엄 이후 정부부처 산하 공기업 수장에 여당 인사 53명이 낙하산 임명됐다고 봤다. 공운법 개정의 명분으로 제시한 내용이다.
법이 바뀌더라도 기관장 임기 변경은 소급 적용이 되지 않는다. 개정안에 부칙을 둬 ▲21대 대통령 임기 시작일부터 법을 시행하고 ▲임기 관련 규정은 법 시행 이후 임명되는 기관장부터 적용한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임기와는 전혀 무관하다.
그런데도 여당이 논의에 부정적인 건 시점 때문이다. 민주당이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현 정부 기관장을 쫓아내려 한다고 봐서다. 국민의힘 기재위 소속 의원은 법 개정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논의 자체로도 산하 기관장에 대한 거취 압박으로 비친다”면서 “민주당이 정권 말기 완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또 공안법에 앞서 ‘배우자 상속세 폐지’를 논의할 기재위 조세소위부터 열자고 했다.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뜻이다.
민주당 기재위 핵심 관계자도 통화에서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무조건 필요한 법이지만, 정치적 압박으로 읽히는 건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곧 정권이 바뀔 것 같으니 공공기관장 임기를 건든다, 속 보인다는 식으로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민주당 정권에서도 반복된 폐해를 근절하려면 즉각 시행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임기 조정하자”더니 정권 잡으면 ‘말 바꾸기’
당장 법 개정을 추진하는 민주당부터 ‘내로남불’이란 비판을 받는다. 윤석열 정부 초반에는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 임기 보장을 주장해서다. 전현희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임기 3년) 건이 대표적이다. 2022년 정권이 바뀌었지만, 민주당과 전 전 위원장은 임기가 남았다며 사퇴를 거부했다. 감사원의 권익위 감사가 시작되자,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표적 감사라고 주장했다.
이듬해인 2023년 5월에는 한상혁 당시 방통위원장에 대한 면직으로 여야가 충돌했다. 윤 대통령이 면직안을 재가하자, 이재명 대표는 “임기가 보장된 공무원을 일반 공무원처럼 면직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은 “공공기관장의 독립성과 임기를 보장하라”는 입장문을 여러 차례 냈다.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야당이던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정책위의장은 “전임 정부가 임명한 공공기관장에 사퇴하라는 건 정치 보복”이라고 했다. 당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부처 전반의 찍어내기가 사법 문제로 비화했다. 임기 보장을 요구하던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또 말을 바꿨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정책 기조가 다른데 함께 일한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20대 국회부터 법 발의… “논의 필요성 충분”
법 개정 시도는 이미 20대 국회부터 있었다. 2019년 김정우 민주당 의원이 관련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기재위 경제재정소위에서 한 차례 논의됐지만, 이후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2022년 21대 국회에선 민주당 오기형·김성환 의원,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이 법안을 냈고 소위에 회부됐지만, 결론을 못 냈다. 같은 해 12월 여야 지도부가 공운법 개정안을 의제로 올렸으나 ‘공공기관장 범위’를 놓고 다투다 파행했다.
소관 상임위원장인 송언석 기재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말기 국민의힘도 ‘알박기’를 막을 임기 조정이 필요하다고 했었다”면서 “현직 기관장이 아닌 다음 대선 이후 적용하는 게 확실하다면, 충분히 논의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다만 “(탄핵 선고를 앞둔) 이런 시기에 꺼내는 건 상당치 정치적”이라며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