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벌어진 계엄 사태와 이어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로 정국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정치권 물밑에서는 혹시 있을지 모를 ‘조기 대선’을 준비하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구속 수감된 윤 대통령의 탄핵안이 인용될 경우 60일 내에 차기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후보는 누구일까. 뚜렷한 선두주자가 보이지 않는 여권에서는 다양한 인물이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의 지지도가 압도적인 야권에서도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다. 그들은 과연 대선 후보가 되는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편집자주]
윤석열 대통령의 1차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지난해 12월 7일, 사진 한장이 미국 CNN 홈페이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장을 빠져나간 가운데, 안철수 의원이 홀로 앉아 있는 장면이었다. 그는 이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의원은 소신에 따라 투표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며 탄핵 찬성 의사를 밝혔다.
외신엔 의미 있는 사진으로 비쳐졌지만, 덩그러니 혼자 있는 모습은 일견 당내에서 그의 입지를 말해주는 듯 했다. 안 의원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단일화했지만, 인수위 시절부터 삐끄덕거렸고 결국 대통령과 멀어지면서 친윤계와도 거리가 생겼다. 그렇다고 딱히 비윤계에서 이렇다 할 구심점 역할을 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는 약점도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안 의원은 우리 정치사에서 독특한(?) 위치에 있다. 그는 2011년과 2012년 서울시장 후보와 대선 범야권 단일후보를 양보하면서 ‘안철수 현상’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던 주인공이다. 이처럼 출발은 민주·진보 성향의 민주당에서 했지만 중도 성향의 국민의당과 바른미래당을 거쳐, 현재는 보수 성향의 국민의힘에 발을 담그고 있다.
이처럼 ‘넓은 스펙트럼’은 현실 정치에서 강점보단 약점으로 작용했다. 정치 활동 기간 동안 창당과 탈당을 반복하면서, 그는 ‘간철수(간보는 철수)’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안 의원이 차기 대권주자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합리·상식적이라는 강점을 내세워 독자세력을 구축하고 이번에야말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합리·상식·원칙’에 유능함까지… 野의 견제 대상
12·3 계엄 사태 이후 정치권에서는 안 의원을 두고 ‘합리·상식·원칙’으로 무장한 중도보수의 대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극우세력과 선을 긋는 행동이 중도층의 표심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자 여지없이 여론조사 차기 대통령 후보 명단에 그의 이름이 올랐다.
이강윤 정치평론가는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계엄·탄핵 국면으로 좁혀서 보면 안 의원은 자기 소신을 비교적 분명하고 일관되게 유지했다”면서 “국민의힘 의원들 중에서는 매우 독보적으로 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 형성된 이미지는 국민 눈높이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의원”이라며 “보수와 합리, 상식, 원칙을 중시하는 유권자의 마음 속에 좋은 이미지를 형성했다”고 했다.
야권에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붙었을 때 가장 경계되는 인물로 안 의원을 꼽기도 한다. 한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비상계엄을 옹호하거나 극우세력과 결집하는 인물들보다는 합리적인 의견을 냈던 여권 인사와 대선에서 경쟁했을 때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고 했다.
또 다른 강점은 ‘유능함’이다. 그는 의사이자 정보통신기술(IT) 기업 안랩(053800)의 창업자이다. 과거 의대 학과장과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의사와 기업가로서 성공한 다재다능함이 정치에서도 발휘될 것이란 기대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자신도 유능함이 가장 좋은 무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존 정치인이 아닌 새로운 인물의 필요성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직접 대선 출마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의료대란 해결, AI 시대 미래 먹거리 만들기 등 문제 해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법률가가 아니라 의사이자 IT 전문가가 꼭 필요하다”며 유능한 정치인 이미지를 피력했다.
◇ ‘개헌 카드’로 대권 주자 면모 부각... 당내 세력無
최근에는 선제적으로 개헌을 외치며 판을 바꾸려 하고 있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기 위한 개헌 논의를 하자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했다. 일찌감치 대권 주자로서 차별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안 의원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총체적 위기의 대한민국을 새롭게 ‘리빌딩’(재건)해야 한다”며 “오는 2026년 지방선거 실시와 함께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를 하자”고 했다.
안 의원이 조기 대선에 출마할 경우 제3지대가 아닌 여당에서의 첫 도전을 하게 된다. 하지만 당내 세력이 전무하다는 점이 당장 큰 걸림돌이다. 특히 보수정당에서 이력이 짧고 정통성이 약하다는 점에서 당내 경선을 뚫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내 ‘자기 편’이 없다는 것도 한계다. 동료의원들 조차 “친한 의원을 꼽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다른 정당을 창당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순 있겠지만, 조기 대선이 이르면 두 달 이후 치러질 수 있어 시간이 촉박하다.
흔히 말하는 ‘친안(친안철수)계’로 분류될 만한 인사도 사실상 없다. 18대 대선에서 안 의원의 캠프 상황실장으로 정계에 입문한 금태섭 전 의원, 19대 대선 당시 안 의원을 지지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모두가 곁을 떠났다. 금 전 의원은 안 의원과 연락을 안 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주변에 사람들이 왜 진득하게 못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세력을 이루기 힘들어 보이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철수가 철수한다(중요한 순간에 사퇴하는 안철수)’라는 인식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서 안 의원에게 희망을 걸었던 인물들이 떠나가면서 나온 말이다.
정치권에선 안 의원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선 ‘자신감’과 ‘포용’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안 의원은 유약하고, 다른 사람들을 끌고 가거나 아우르는 리더십이 없다는 이미지가 있다”며 “단순히 목소리 크고 강한 이미지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품고 가는 능력을 자신 있게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