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전경/기획재정부 제공

정부가 감액 배당에 대한 과세 제도의 손질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대주주가 세금을 회피하기 위해 감액 배당을 악용할 소지가 있지만, 비과세라는 특징 덕분에 회사가 보다 적극적으로 배당한다는 반론이 있어서다. 조세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도 동학 개미(국내 주식 투자자)의 등쌀에 감액 배당은 삼키지도 또 뱉지도 못하는 뜨거운 감자가 됐다.

17일 세제당국에 따르면 정부 내에서 감액 배당 개편 필요성을 두고 미묘한 기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감액 배당은 주주가 출자한 돈인 자본준비금을 재원으로 배당하는 것으로 비과세다. 회사가 제품·서비스 등을 팔아 번 이익을 나누는 일반 배당과 달리 주주가 낸 돈을 다시 돌려주는 차원이라 세율이 0%다. 2023년 메리츠금융지주가 2조1500억원을 감액 배당하면서 최대 주주인 조정호 회장은 배당금으로 2307억원을 받았지만 세금은 1원도 내지 않았다.

이처럼 세금을 안 내는 감액 배당의 장점이 알려진 후 올해 초부터 여러 상장사가 이를 활용하자, 기획재정부는 일반 배당의 경우 15.4%는 세금으로 내야 한다.

학계에선 감액 배당이 당장 수정돼야 할 제도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자본준비금이 이익으로 변경돼 주주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배당과 차이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인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현재의 감액 배당은 주주들이 자신이 낸 돈(자본준비금)을 돌려받는 차원이 아니다”라며 “미국은 이익잉여금이 없을 때만 자본준비금을 배당 재원으로 쓸 수 있게 해놨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이익잉여금과 자본준비금의 합이 자본금의 1.5배를 넘기면 감액 배당을 할 수 있다.

기재부는 감액 배당의 개편 방법을 다양하게 검토해 왔다. 주주가 주식을 산 가격(취득가액)보다 회사가 더 큰 금액을 했을 때 세금을 부과하는 안은 물론,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한 새로운 계산식을 도입하는 안도 고려했다. 가령 자본준비금으로 감액 배당을 했더라도 이 중 일정 비율은 이익잉여금을 재원으로 한 일반 배당과 동일하게 취급해 일괄로 배당소득세를 매기는 것이다. 또 감액 배당을 일반 배당과 아예 똑같이 보고 동일한 세율을 매기는 안도 후보군 중 하나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코스닥 지수와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뉴스1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현행 감액 배당이 유지될 가능성도 고개를 들고 있다. 감액 배당에 대한 세제 혜택 축소에 대한 투자자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서다. 정부 관계자는 “(감액 배당을) 잘못 건드렸다가 코스피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면서 “개편안을 결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현재의 비과세 감액 배당이 존치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 그래도 국내 증시는 배당에 인색한데, 대주주에겐 배당 유인책으로 작용하는 감액 배당을 없애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투자자는 “배당에 대한 세금 때문에 회사가 배당에 소극적이고, 주주는 우량주에 장기 투자하기보다는 테마주로 단기 투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투자자는 “나라는 세금을 뜯어갈 생각만 하느냐”고 했다.

반응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조세 정의만 내세울 수 없는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배당소득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고 했던 것 역시 감액 배당 개편 장애물이다. 당시 이 대통령은 “배당을 촉진하기 위한 세제 개편이나 제도 개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감액 배당 개편 여부는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에 공개될 세법 개정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세법 개편안을 준비 중이나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