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고속철도(KTX·SRT) 통합 방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토교통부는 부처 차원에서 관련 검토를 진행 중이며, 국정기획위원회도 해당 사안을 국정과제에 포함할지를 논의 중이다.
15일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KTX와 SRT가 분리 운영된 지 10년을 맞은 시점에서, 철도산업의 효율성과 공공성 제고, 운영 리스크 완화 등을 다룰 통합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유보됐던 사안인데, 현 정부 들어 다시 정책 테이블에 올라오면서 철도노조와 시민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이원화된 고속철도를 통합해 운행 횟수를 늘리고 국민 편의를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통합 추진의 배경으로는 안전성 강화와 중복 투자 최소화가 제시됐다.
이는 전국철도노동조합이 강하게 요구하는 바이기도 하다. 철도노조는 지난달 28일 “2025년을 통합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공약만으로 공공성이 회복되지 않는다”면서 정부에 조속한 정책 이행을 요구하고 있다.
통합 현실화에 대비해 국토부는 기술적·제도적 쟁점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향후 국정위의 과제 선별 결과에 따라 정책 방향을 정할 계획이다.
국토부가 지난 2021년 발주한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 연구에 따르면, KTX 운영사인 코레일과 SRT 운영사인 SR의 분리 구조로 인해 발생하는 중복 비용은 연간 406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SR은 전체 고속열차 32대 중 22대를 코레일로부터 임차해 운행하고 있으며, 정비·관제·승차권 발매 시스템 등도 대부분 코레일 또는 자회사에 위탁하고 있다.
철도노조 측은 “경쟁이라는 명분 아래 구조적으로 분리된 현재 체계는 비효율을 키우고 있다”면서 “통합을 통해 인프라 활용도를 높이고, 철도공공성 회복이라는 본래 목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또 통합 시 열차 공급 능력이 확대되고, 이용자 편의도 높아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 SRT는 수서역, KTX는 서울역을 기점으로 운행되는데, 통합 체계가 구축되면 하루 23회(서울 7회, 수서 16회) 증편과 약 1만5000석의 좌석 추가 공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KTX에 적용되는 일반열차 환승 할인(30%)을 SRT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예매 시스템도 통합할 수 있어 국민 편익도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 철도노조의 주장이다.
정부는 통합이 가져올 실익뿐 아니라 현실적인 부담 요소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 통합으로 수백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있지만, 이는 SR 인력 구조조정 등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국토부 내부에서도 조직 재편 시 인력 문제와 노조 리스크를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파업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크다. SR은 설립 이후 단 한 차례도 파업에 참여한 적이 없다. 반면 코레일은 공공기관 중 파업 시 사회적 영향력이 가장 큰 기관으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코레일 노조는 임금 교섭을 둘러싸고 총파업에 돌입한 바 있다. 노조는 2019년 이후 매년 태업·파업을 반복하고 있다. 코레일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3년까지 누적 피해액은 115억원에 이른다. 시민 불편 등 간접 피해까지 감안하면 파장은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때문에 “양사 통합 시 코레일의 파업 리스크가 SR에도 전이돼 고속철 운행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반면, SR 노조는 통합에 반대하는 입장을 일찍이 명확히 해왔다. SR 노조는 과거 “코레일과의 통합은 명분도 없고 국민 편익을 무시하는 것”이라며 반발하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SR이 전체 수익의 80% 이상을 국가에 환원하고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만큼, 민영화 우려는 해소됐고 통합의 당위성도 약해졌다는 주장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통합보다 ‘교차 운행 확대’ 등 점진적 개선으로 실익을 추구하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SRT가 서울역까지 KTX가 수서역까지 진입하도록 하면 국민 편익도 높이고 중복 투자도 줄일 수 있다는 구상이다. 다만 현재의 선로 배정 구조상 실행이 어려운 상태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KTX와 SRT 통합 논의는 정권 교체 때마다 공약으로 떠오르며 정치적 소모전으로 흐르고 있다”면서 “본래 경쟁 체계 도입 취지였던 비용 절감과 소비자 서비스 향상 성과를 기준으로 정책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평성 문제는 수익 재조정 등으로 보완할 수 있으며, 단순히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통합을 밀어붙이는 건 정책 취지를 흐릴 수 있다”면서 “양 사의 성과와 소비자 후생을 객관적으로 따져 본 뒤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