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 7월 3일 오전 9시 조선비즈RM리포트 사이트에 표출됐습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간주돼 온 공동행위에 대해 예외를 허용하자는 논의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사업과 석유화학업계의 설비 가동률 조정 등 업계 단위의 협의를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취지다. 경쟁법의 원칙인 자율경쟁을 지키면서도 정책적 유연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정위는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며 법제도 검토에 들어갔다.
3일 정치권과 업계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석유화학 산업에 각각 다른 형태의 담합 예외를 제도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사업을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명시했다.
이 공약은 가맹점주, 대리점주, 플랫폼 입점업체 등 ‘을’의 위치에 있는 사업자에게도 단체 등록과 단체협상권을 허용해, 대기업과의 협상력을 높이겠다는 민주당의 전반적 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에도 단체협상권을 부여함으로써 보다 안정적인 거래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공정위는 지난 2월 ‘중소기업 등에 대한 경쟁법 적용 제외 관련 비교법적 연구’ 용역을 발주하고 관련 제도 도입의 타당성을 분석 중이다. 이번 연구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을 포함한 공동행위에 대한 국내외 입법례와 법 집행 사례를 비교하고, 경쟁법 적용 예외의 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사업에는 원자재 공동 구매, 대형 수요처에 대한 공동 납품 계약 등이 포함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9월 중 용역 결과가 나올 예정이며, 너무 늦지 않게 정책 방향을 정할 수 있도록 내부 검토도 병행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정해진 방향은 없으며, 찬반 양쪽 입장의 논리와 제도 적용의 파급효과를 함께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중소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공동사업에 공정거래법상 예외가 적용될 경우, 조합 외 기업이 가격 결정이나 납품 기회에서 경쟁상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 협동조합과는 별개로, 석유화학 업계에 대한 공정거래법 면제 논의도 국회에서 본격화했다.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은 지난달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생산설비의 가동률 조정이나 생산량 감축 등 기업 간 협의를 공정위의 담합 제재 대상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과거 제품 가격 담합으로 공정위 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다. 대표적으로 1994년부터 2005년까지 폴리프로필렌·고밀도 폴리에틸렌 가격을 담합한 SK, LG화학, 효성 등 10개 석유화학 업체에 1051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된 바 있다.
석유화학 업계는 글로벌 수요 둔화, 중국발 공급 과잉, 에너지 가격 상승 등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 설비를 폐쇄하지 않고도 생산량을 줄이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업계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현행법상 담합으로 간주되는 ‘화학적 통합’ 방식에 제도적 예외를 허용하자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 내부에서는 국제 경쟁법 체계와의 충돌 가능성도 검토하고 있다. 석유화학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산업은 국내에서 예외를 허용하더라도, 해외 수입국에서 경쟁법 위반으로 제재를 받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는 입장이다.
정책 추진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시각도 갈린다. 한 대형 로펌의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는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행위는 대항 카르텔 성격도 있어 협상력 제고를 위한 정책 검토는 필요하다”면서도 “예외 적용이 일반화되면 중소기업 간 담합이 오히려 확산할 수 있어 제도 설계에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국내에서 기업 간 협의를 허용하더라도 해당 제품이 수출된다면 수입국의 경쟁법 적용을 피하기 어렵다”면서 “수입국의 법령상 예외 조항이 있더라도 우리나라 법률에 따른 행위가 그 요건에 부합하는지까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중소기업협동조합의 공동사업은 지금도 일정 범위에서 예외가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법을 만들기보다는 기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고 보완할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