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9일 소비 진작과 건설경기 활성화 방안을 담은 30조5000억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공식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경기 부진 극복을 위한 신속한 추경 편성 방침을 밝힌 데 따른 것이다. 새 정부는 출범 20일 만에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하게 됐다. 지난달 국회에서 통과된 ‘필수 추경’까지 포함하면 총 35조원 규모의 재정·금융 지원이 추가 집행될 전망이다.
이번 추경을 위해 정부는 20조원 규모의 적자국채를 발행한다. 소비·건설 부진 등 내수 침체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경기 반등을 위해 나랏빚을 늘리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번 추경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48.4%에서 49%로 상승하게 됐다.
한편 일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추경 효과가 단기적인 소비 부양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추경이 물가를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와 확장재정이 이어질 경우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나오고 있다.
◇ 정부, 경기 진작·민생 안정에 20조2000억원 투입… “올해 GDP 0.1%p 올릴 것”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30조5000억원의 추경 예산안을 심의 의결했다. 이번 추경안은 세출 확대 20조2000억원, 세입 경정 10조3000억원으로 구성됐다. 1차 추경에 이은 이번 추경으로 올해 정부 총 지출은 본예산 대비 28조7000억원 증액된 702조원으로 늘어난다.
분야별로 보면, 소비여력 보강에 11조3000억원, 건설경기 활성화에 2조7000억원, 신산업 투자 촉진에 1조2000억원이 각각 배정됐다. 이 외에도 ▲소상공인 재기 지원 1조4000억원 ▲고용 안전망 강화 1조6000억원 ▲취약계층·물가 안정 지원 7000억원 ▲지방 재정 보강 1조3000억원 등이 포함됐다.
가장 주목되는 항목은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지역사랑상품권’이다. 정부는 10조3000억원을 투입해 전 국민에게 1인당 15만~50만원의 소비 쿠폰을 순차 지급한다. 1차 지급에서는 차상위계층에 30만원, 기초생활수급자에 40만원, 그 외 국민에 15만원을 지급하고, 2차에서는 소득 상위 10%를 제외한 전 국민에게 10만원을 추가 지급한다. 지역사랑상품권도 역대 연간 최대 규모인 29조원 발행을 지원한다.
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지원도 눈에 띈다. 정부는 PF 금융지원을 위해 5조원을 투입해 약 3조원 수준의 금융 유동성을 공급할 계획이다. 또한 2028년까지 준공 전 미분양 주택 1만호를 환매조건부로 매입하고, 철도·항만 등 주요 사회기반시설의 조기 착공 및 준공도 적극 추진한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경기 반등 모멘텀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실제로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은 전년 동기 대비 역성장을 기록했고, 민간소비(-0.1%)와 설비투자(-0.4%)도 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했다. 한국은행과 KDI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각각 0.8%로 예상했고, 프랑스 은행 소시에테제네랄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3%까지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임기근 기획재정부 2차관은 “미 관세 충격, 소비·건설 투자 부진 등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급격히 둔화돼 있다”며 “민생 어려움과 취약 부문 부실의 악순환을 끊고, 경제 선순환 구조를 되돌릴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추경을 통해 올해 GDP 성장률이 0.1%포인트(p)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임 차관은 “이번 추경은 GDP 성장률을 0.2%포인트(p) 높일 것으로 본다”면서도 “정책 집행 시기가 하반기이기 때문에 올해 경제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0.1%p정도일 것”이라고 봤다.
◇ 소비 부양 효과, 단기에 그칠까… 재정건전성 악화·물가도 우려 사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추경이 소비 심리 개선에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생회복 소비쿠폰과 지역사랑상품권 등은 단기적으로 소비를 유도하지만, 물가 상승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두 달 정도는 소비 증가 효과가 있겠지만 이후 물가 상승 등의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형석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도 앞서 “(그동안) 재정건전성 악화, 정부 부채 증가, 확장적 재정정책은 물가 상승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며 “재정적자 상황에서의 재정정책이 재정흑자 상황에서보다 더 큰 인플레이션 유발 효과를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한 바 있다.
소비쿠폰, 지역사랑상품권 지원 효과가 일부에게만 집중될 경우의 부작용도 제기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는 “이런 소비쿠폰 방식은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현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다만 소비가 특정 계층에 몰릴 수 있는 만큼 추경 이후에도 어려운 자영업자가 사업을 정리할 수 있도록 돕는 폐업 지원, 재교육 등 퇴로를 열어주는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20조원의 국채 발행이 자금조달 금리를 자극하거나, 회사채의 인기를 더욱 하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교수는 “지금은 금리를 인하해야 할 상황인데 적자국채 발행은 자본조달 금리를 자극할 수 있다”며 “중소·기술 기업에 자금을 공급해 고용을 유도하는 방식이 소비 진작과 시장에 더 효과적이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 정책이 재정 확대 쪽으로 가닥이 잡힌 만큼,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더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추경으로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86조4000억원에서 110조4000억원으로 늘었다. GDP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도 -3.3%에서 -4.2%로 늘어난 상황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나랏빚을 조절하기 보단, 써야 할 돈은 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임 차관도 지난 17일 진행된 새정부 추가경정예산안 기자간담회에서 “경직적인 재정준칙의 실용성,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며 “현재 재정여건이나 경제 여건에서 재정준칙을 엄격하게 지키는 게 지금 단계에서는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계속해서 확장 정책을 펼칠 경우,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상승할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인 부양 정책을 쓰기 보다, 장기적으로 GDP를 늘릴 방법과 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